[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고 호송차로 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고 호송차로 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2심, 업무상 위력 폭넓게 인정

“‘피해자다움’은 편협한 관점”

“‘성인지 감수성’ 잊지 말아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자신을 수행하던 비서를 지위를 이용해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무죄였던 1심이 뒤집힌 이유로 2심 재판부가 ‘업무상 위력’을 인정하고 ‘피해자다움’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지난 1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재판부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안 전 지사에겐 이 이상 없을 굴욕이었다.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던 안 전 지사가 2심에선 10가지 혐의 중 9가지 유죄로 인정될 만큼 전혀 다른 판결을 받아든 이유는 재판부의 분명한 시각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 (출처: JTBC뉴스룸 캡쳐)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 (출처: JTBC뉴스룸 캡쳐)

◆“피해자답지 않아 위력 행사로 보기 어렵다?”… 2심 재판부 전면 반박

1심 재판부는 위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피해자 김지은(34)씨의 태도였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가 피해상황 이후에도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식당을 알아본 점, 동료들에게 장난을 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안 전 지사에게도 이모티콘을 사용한 점, 또 이후 발생한 간음 상황에서 안 전 지사의 ‘씻고 오라’는 지시를 거절하지 않음 점 등을 들어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지방별정직 공무원이라는 신분상 특징과 비서라는 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지시를 순종해야 하고 내부적 사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비서 신분인 김씨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상관인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나 권세 자체가 충분한 ‘무형적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순두식당을 찾은 것은 수행비서로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씻고 오라’는 지시도 수행비서로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문자와 이모티콘 역시 평소 피해자가 문자를 이용하던 어투나 표현, 젊은이들이 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특별히 동료나 피고인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성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건 정형화환 피해자 반응만 정상적인 태도로 보는 편협한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논리를 완전히 깨트린 것이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가운데 여성단체 회원들이 성폭력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가운데 여성단체 회원들이 성폭력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2.1

◆“합의 하에 이뤄졌다”는 주장도 부정

2심 재판부는 “합의 하에 이뤄졌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도 반박했다. 첫 피해상황 발생이 수행비서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점, 20세 연상 유부남이자 직장 상사인 안 전 지사에 대한 이성적 관심이나 흠모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특히 피해자의 폭로 직후 안 전 지사가 스스로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사과문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안 전 지사는 이후에도 재차 김씨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피해 사실을 폭로하자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글을 게시해놓고선 자신이 직접 게시한 글의 문언상 의미를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는 일관되게 자신이 괜찮다고 대답할 때까지 안 전 지사가 계속 미안하다고 했고, 호칭이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거나 연인으로 취급하는 어떤 것도 없었단 취지로 대답했다”며 “안 전 지사도 피해자에게 지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할 때 간음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점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 성향도 영향

이러한 현격한 시각차의 원인을 두고 2심 재판장인 홍동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주목받고 있다. 홍 부장판사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엔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로부터 ‘디딤돌’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홍 부장판사는 이번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의미한다. 대법원이 지난해 4월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대학교수 사건에 처음 법정에서 거론된 이 표현은 점차 성범죄의 새 판단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울러 2심 재판부엔 여성인 성언주 판사가 포함된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심 재판부는 판사 3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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