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김복동 할머니가 1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뜨셨다. 인생 후반부에 진실을 드러내고 인권운동 평화운동의 길을 여셨지만 한 많은 삶을 살다가 떠났다는 생각이 앞선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숨도 못 쉬고 살다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 나온 때가 1992년이다. 이 때 이미 연세가 66세였다. 성노예 피해자로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먹는 게 얼마나 힘드셨을까. 또 얼마나 막막했을까. 더욱이 그 때는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이지 않은가.

김복동 할머니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다른 분들도 용기 있게 나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에 나온 뒤 할머니께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의 진실을 드러내는 활동에 매진했다. 그와 동시에 노동현장을 비롯한 투쟁의 현장을 누비셨고 유엔은 물론 외국 곳곳에 직접 가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뭉치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해방을 4년 앞둔 1941년에 만15세의 나이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다. 일본군 성노예로 죽음보다 무서운 나날을 보내다가 해방을 맞았지만 필리핀에 있는 미군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운명에 처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일본에게 항복을 받은 미국은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간 조선인 피해자들을 포로수용소에 몰아넣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안전하게 조선으로 귀국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결혼을 재촉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성노예 경험과 결혼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 했던 슬픔을 누가 알까. 딸의 말을 듣고 혼절한 어머니는 심장병까지 발병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어머니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 결혼을 하긴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 살게 됐지만 사업하다 망하고 결국 사별하게 됐다. 호구지책으로 열어 놓은 구멍가게는 도시개발 강행으로 강제철거를 당해 더 이상 가게를 할 수 없었다. 채소밭 일꾼으로 나섰다. 

내 어머니는 1929년생이다. 할머니보다 세 살 아래다. 15세에 결혼했는데 일제에 ‘공출’로 강제로 끌려갈까봐 조혼을 했다. 서둘러 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시집와서 고생했다고 원망 섞인 말씀을 종종 하셨다. 김복동 할머니는 딸만 여섯 있는 가정에 넷째였다. 일본군에 끌려 갈까봐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넷째는 15세에 불과해서 설마 했는데 결국 끌러가고 말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국가 차원에서 배상하길 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의 경우처럼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말을 해서 피해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기를 거듭했다. 

일본 아베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박근혜 정권과 협잡을 통해 이른바 ‘위안부 합의’라는 걸 발표했다. 큰 그림은 미국이 조율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한일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내용이 얼마나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치욕적인지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일본에서 100억을 넘겨받아 이른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는데 돈 100억과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를 맞바꾸느냐는 비판이 비등했다. “할머니들을 팔아가 그 돈을 가지고…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여태까지 싸웠나? 위로금이라 하는 건 1000억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가 없다. 바로 돌려보내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 온 뒤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결정을 해 나가고 있다. 이른바 ‘위안부 합의’가 작동을 멈췄고 ‘화해치유재단’은 아직 100억원을 되돌려 주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해산되는 거나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위안부 합의’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조치를 취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폐기해야 한다. 

“죽거들랑 나비가 되어 온천지 세계로 날아다니고 싶다”던 할머니의 꿈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계속 싸우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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