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8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8

인터뷰|고은당 정하근 대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작품

해외 반출로부터 지키고 알려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지난해 10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일주일 간 열렸다. 전시는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가 그간 수집한 이방자 여사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 오프닝 당일에만 450여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관람객은 이방자 여사의 삶과 혼이 담긴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올해는 이방자 여사가 타계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작년에 이방자 여사의 혼이 깃든 작품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역사적으로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낙선재에서 나온 이후 역사적으로 잊히고 있다”라며 “한국에 기념관을 세워 한국인으로 살길 바랐고 봉사의 삶을 살았던 이방자 여사의 업적을 기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한매쌍작'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한매쌍작'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이방자 여사의 삶과 시각

이방자 여사의 일본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다. 1901년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열여섯에 조선 황태자 이은과 결혼을 신문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한일의 민감한 시대에 정략결혼을 하게 된 이방자는 두 나라의 관계와 왕족 간의 관계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내조를 하며 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11세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 황태자 이은에게는 일본에서 황족대우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이 매우 불편했다. 이방자 여사는 이러한 남편 이은에게 조용하고 세심하게 내조를 했다.

그는 몇 번의 유산의 슬픔과 고통에서 10년만에 둘째 아들 구를 출산했다. 이후 진주만공격과 일본 패전으로 이은과 이방자는 한국과 일본에게 모두 버림받는 아픔을 겪는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방자 여사 모습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방자 여사 모습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1962년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동으로 마침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 하지만 이은은 한국에 돌아와 병마와 싸우다가 7년 만에 서거했다. 이후 이방자 여사는 온전히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평소 이들은 한국에 돌아가면 봉사활동과 선행을 하고 살자며 다짐을 해왔으며 일본에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신체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시설 자행회와 명휘원을 설립해 봉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한국에서는 국민훈장 문화장을 수상했다. 귀국 초 이방자 여사는 일본인이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으나 꾸준한 복지활동으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아니라 복지의 어머니로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 대표는 “한일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이방자 여사는 남은 생애를 낙선재에 머무르며 한국인으로, 그리고 후회 없는 봉사인으로 지냈다”며 “그는 한국 근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으며 인간애를 보여주고자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칠보 한복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칠보 한복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이방자 여사 작품 전박물관 세워져야

정 대표는 이방자 역사의 삶이 우리 국민에게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살아생전 남긴 작품을 전시하는 기념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방자 여사는 어려서부터 예능에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칠보, 서예, 그림, 도예 등 다방면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해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수익금 전액은 지체장애자들의 재활과 사회적 역량 강화를 위한 학교 명휘원과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평생 복지 사업에 헌신했다.

정 대표는 “영친왕비가 생전에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다양한 예술 활동과 칠보 작품을 통해 평생 봉사의 삶을 살다 간 발자취와 따뜻한 선행, 덕목을 되새기기 위해 기념관이 설립돼야하며, 이를 통해 한일 문화의 교류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의 위치는 전주이씨의 본향인 전주를 꼽았다. 그는 “전주는 지역성,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의 균형발전 교통 등 여러 가지 여건을 통해 원활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칠보액자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이방자 여사의 작품인 칠보액자 (제공: 고은당) ⓒ천지일보 2019.1.28

전주에는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제317호)뿐 아니라 이를 보관하던 경기전(사적 제339호), 전주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전주 풍남문(보물 제308호) 등 주요 문화재가 있다. 또한 10여개의 주요 박물관도 위치해 있어 역사를 둘러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전주를 찾고 있다.

최근 역사계도 일제강점기에 대해 ‘빼앗긴 시간’ 혹은 ‘외세에 억압된 시간’으로만 보지 않고 정치적 혼돈기 근대화가 시작된 격변기로 재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방자 여사는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한국인으로 늘 천명했던 이방자 여사가 지역사회 발전과 소외계층에 사용되는 기금 마련을 위해 한 작품 또한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보호해야하며 기념관 설립을 통해 우리 유산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념관이 한일 두 나라 관계의 교류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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