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역사 속 군인 (2)
[사진으로 보는 역사] 역사 속 군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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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별기군(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27
별기군(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27

별기군(1900)

1881년(고종 18)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교련병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강화도조약 이후 서구 열강의 침투가 심해지자 고종은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군사제도를 기존의 5군영에서 무위영과 장어영의 2군영 체제로 개편하고 별도로 무위영 안에 신식 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을 창설했다.

별기군의 총책임자인 교련소 당상은 민영익이 담당했으며, 정령관에는 한성근, 좌부령관에 윤웅렬, 우부령관에 김노완, 참령관에 우범선이 임명됐다. 군사 훈련은 일본인 호리모도가 담당했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여러모로 기존의 구식 군대보다 좋은 대우를 받게 되자 별기군 창설 이듬해인 1882년 구식 군인들에 의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군사제도 자체가 다시 옛 군영체제로 돌아갔으며, 별기군도 5군영의 본대로 흡수됐다.

사진 속 맨 오른쪽에 있는 군인의 옷소매는 다른 군인들과 달리 두 줄인데 이는 계급을 표시하는 것이며, 허리에 두른 것은 탄창주머니다.
 

삼군부 마당에서 훈련하는 군인(1904)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27
삼군부 마당에서 훈련하는 군인(1904)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27

삼군부 마당에서 훈련하는 군인(1904)

1897~1907년 사이에 존재했던 대한제국 군대의 모습이다. 1904년 러일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시위대와 친위대, 각도의 진위대, 홍릉(명성황후의 능)수비대, 무관학교와 육군위생원 등의 기구를 갖춘 2만명이 넘는 대규모의 군대였다. 서울에 있던 중앙군은 그 역할에 따라 시위대, 친위대, 호위대로 나뉘었다. 시위대는 황실보위를 주요임무로 하는 대한제국 정예군으로 1902년 10월 완편 기준으로 2개 연대, 1개 독립기병대대, 2개 군악소대가 편제됐다. 친위대는 원수부 직속으로 수도방위의 책임을 지는 중앙군이다. 호위대는 황제의 시종을 담당하던 시종원 소속으로 황제의 근접경호를 책임졌다.

사진은 삼군부 마당에서 훈련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뒤로 광화문이 보인다. 단층짜리 건물은 군인들이 머무는 막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1880년 삼군부는 폐지됐으며 건물은 이후 통리기무아문과 시위대 청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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