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와 달라” 상인들 속앓이
“구매대신 눈으로만 ‘아이쇼핑’”
시장대신 백화점서 예약 구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보기에 다니는 사람은 많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 빈 손이에요. 손에 한 가득 보따리 들고 다니며 물건을 사야 되는데, 다 눈으로만 봐요.”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26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홍의영(62, 여)씨는 사람만 많지 실속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대문시장은 설 연휴 시작을 한 주 앞둔 주말을 맞아 구경 나온 사람으로 꽤 북적였다. 시장 입구에 위치한 한 맛집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에도 줄 서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길 가운데를 차지한 먹거리 노점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겉보기엔 설 대목을 맞아 활기찬 시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시장 상인의 속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화장품 판매업을 하는 홍씨는 “쓸 줄 아는 사람은 다 백화점으로 가는 것 같다. 여기는 눈으로 구경만 하고 사질 않는다”며 “새벽시장에 와보시라. 밤낮으로 일하는데 진짜 장사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일주일에 두 번씩 밤을 샌다. 아침에 나오면 그 다음날 밤늦게 들어간다. 하루에 수백명을 만나는데,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건 극소수”라면서 “요즘엔 거의 의무감으로 시장을 도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홍씨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광버스가 예전엔 45명 꽉꽉 채워 왔는데, 이젠 절반 채우기도 힘들다. 버스기사는 기름 값도 안 나온다고 한다”며 “동대문 평화시장 3층은 또 문 닫은 가게가 생겼다. 이젠 문 닫은 곳이 훤히 보인다”고 전했다.
홍경자(75, 여)씨는 얼마 전에 “장사하던 60대가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며 “밤새 일을 해도 장사가 안 되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에서 43년째 옷가게를 운영하는 홍씨는 “왔다 갔다 하며 옷 만지작거리고 가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사는 사람이 없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백화점은 다 정찰제 아닌가. 여기는 덤으로 주는 것도 있고, 발품 팔면 더 싸게 사는 것도 가능하다”며 “재래시장을 살려야 서민들이 싼 값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기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재래시장의 정을 뽐내기도 했다.
남대문시장을 방문한 손님에게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옷과 신발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을 찾는다는 이희수(70대, 여, 마포구)씨는 “가끔씩 오는 거지만 그래도 손님이 줄어드는 게 보인다”며 “예전엔 주말이면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요샌 내국인보단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발품을 팔며 물건을 사는 일이 줄어드는 반면 백화점 매출은 오히려 성장하는 모양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4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설 선물세트 판매 기간 매출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이 52.3% 신장했다고 밝혔다.
특히 설 선물을 예약 기간에 온라인으로 구매한 뒤 배송으로 받아 보는 구매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마트는 작년 12월 1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설 선물세트 사전예약 판매를 진행한 결과 전년 대비 매출이 68% 올랐다고 밝혔다. 미리 제사를 지낸 뒤 명절 연휴 동안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