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패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위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패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위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59년 만에 우승 한풀이에 도전했지만 8강에서 좌절됐다.

한국은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후반 33분 압둘아지즈 하템의 기습 중거리슛으로 실점해 0-1로 패했다. 바로 직전 김진수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온 직후라 아쉬움은 더 컸다. 압둘아지즈 하템은 아크서클 전방 25m 지점에서 기습적인 왼발슛으로 오른쪽 구석 골문을 갈랐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지난 2017년 6월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때 당한 2-3 패배를 설욕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패배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로 연결된 바 있다. 아울러 카타르전 2연패가 됐다.

한국으로선 아시안컵 정상 도전을 또다시 4년 뒤로 미루게 됐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질긴 악연을 갖고 있는 한국과 이란이 동시에 4강에 진출한 것이 1988년 대회 이후 없다는 것. 결승에서 맞붙은 것도 1972년이 마지막이다.

중동과 동북아에서 각각 맹주를 자랑하는 양팀이지만 유독 아시안컵에서 만큼은 약 반세기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다. 양팀 모두 우승을 맛본 지 오래다. 1960년 이후 우승이 없는 한국만큼이나 이란도 1976년 이후 정상에 오른 적이 없어 우승에 목말라 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1976년 이후 결승에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한국 역시 1988년 준우승 이후 결승에 진출하기까지는 27년이 걸렸다.

이 같이 된 배경에는 두 팀이 5회 연속 8강에서 맞붙는 물고 물려야 했던 질긴 악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를 이기고 올라가도 징크스 때문인지 결승문턱에서 매번 좌절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대회에서 이란과 6회 연속 8강에서 만나는 대신 4강에서 만날 기회를 맞았으나 이란이 이라크에 8강전에서 패하면서 한국은 이라크를 만났다. 이란과 8강 징크스가 깨져서인지 한국은 이라크를 이기고 27년 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호주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지난해 8월 23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16강전에서 맞붙은 한국과 이란. 한국이 2-0으로 승리한 뒤 손흥민이 이란 선수를 위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8월 23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16강전에서 맞붙은 한국과 이란. 한국이 2-0으로 승리한 뒤 손흥민이 이란 선수를 위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과 이란, 두 팀의 악연의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축구는 1986년 월드컵부터 1994년 월드컵대회까지 3회 연속 진출했고, 특히 1994년 미국대회에서 독일, 스페인을 상대로 멋진 승부를 펼쳐 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하던 때였다.

예선전부터 쿠웨이트에 0-2로 일격을 당해 1승 1무 1패로 어렵게 와일드카드로 진출했지만 우승 기대는 변함없었다. 8강전 상대는 이란.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3-0으로 가볍게 이긴 적이 있었던 터라 4강 진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김도훈과 신태용의 골로 2-1로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전서 이란에게 잊지 못할 참패를 당하고 만다.

후반 6분 만에 아지지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뒤 알리 다에이의 ‘원맨쇼’에 무려 4골을 더 내줘 2-6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다. 이로 인해 박종환 감독은 곧바로 전격 해임되고, 대표팀 멤버들은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등의 수술을 강행하게 된다. 이란은 4강전에서 사우디에 승부차기 끝에 패한다.

2000년 대회에서도 예선전부터 한국의 부진은 계속됐다. 중국과 비긴 뒤 쿠웨이트에 또다시 패해 1승 1무 1패로 와일드카드로 어렵게 8강에 오른 탓에 이란과 다시 만났다. 0-1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다가 종료 직전 김상식의 동점골로 패배 위기를 벗어났고 연장전에서 이동국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4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졸전 끝에 1-2로 패해 국내 감독으로선 유일한 대안이었던 허정무 감독이 경질됐다. 프랑스 출신의 트루시에 감독을 앉히고 성공을 거둔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 우리 역시 외국인 감독 체제로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룸에 따라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고 이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의 대성공을 거두는 결과로 이어진다.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예선에서 오만에게 1-3 패배를 당하는 ‘오만 쇼크’로 인해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어 조별리그 2승 1무로 승승장구하며 8강에 올랐다. 특히 조별리그에서는 계속 만날 때마다 약세를 면치 못했던 쿠웨이트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둬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다만 8강은 3회 연속 이란과 다시 만났다. 전반부터 이란이 골을 넣으면 우리가 곧바로 반격하는 골폭죽을 주고받은 끝에 3-4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이란의 알리 카리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순항하던 본프레레호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이란 역시 4강에서 중국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해 우리를 꺾고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징크스는 이어졌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8강전 또 이란을 만났다. 이때 우리 대표팀은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 코치를 역임해 한국축구와 인연이 깊었던 핌 베어백 감독이 수장을 맡았다. 이란과 8강전에서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이겨 복수에 성공했으나 4강전에서 이라크와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패해 결승행은 좌절된다. 3-4위전에서도 일본과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이겨 겨우 자존심을 챙긴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3경기 연속 승부차기에 417분간 무득점이라는 진기록을 남긴다.

2011년 아시안컵은 외국인 감독 체제 대신 다시 국내 감독으로 전환해 조광래 감독이 이끌었다. 이란과의 질긴 인연은 또다시 이어졌다. 조별리그에서 호주와 승점은 같았으나 1골차가 뒤져 2위로 밀린 탓에 이란을 비켜가지 못하고 또 만났다. 5회 연속 8강 맞대결이다.

이란과 8강에서 지겹도록 만났지만 치열한 불꽃 싸움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0-0으로 정규시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에 돌입했고, 승부차기까지 갈 듯 했던 승부는 연장전반 종료직전 터진 윤빛가람의 결승골로 1-0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전 네 번의 8강전에서 순차적으로 번갈아가며 승리를 나눠가졌기에 순서대로라면 이란이 승리할 차례였으나, 우리가 이를 깬 것. 그러나 4강전에서 일본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패함으로써 이란과의 8강전 후유증 징크스는 지겨울 정도로 계속된다.

4년 후인 2015년 호주대회. 대회를 앞두고 조추첨식에서 이란이 바로 옆조가 아닌 건너편 조에 속하며 다행히 6회 연속 8강에서 만날 일은 피했다. 다만 한국과 이란이 나란히 조 1위를 차지해 4강에서 만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이라크가 3골씩 주고받는 명승부 끝에 승부차기(7-6 )승리로 이란을 잡아준 덕분에 한국과 이란의 악연은 6회 대회 만에 중단됐다. 한국은 8강에서 우즈벡을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한 후 4강전에서 이라크를 잡고 27년 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연장 승부 끝에 호주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에서 손흥민이 연장 후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그라운드에 쓰러져 차두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에서 손흥민이 연장 후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그라운드에 쓰러져 차두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번 2019년 대회에서는 한국과 이란이 자칫 8강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는 대진이 나왔다. 한국이 조 1위를 차지하고 이란이 2위를 할 경우와, 반대로 이란이 조 1위를 차지하고 우리가 조 2위를 할 경우 8강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조별리그 두 경기를 치룬 상황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골득실에서 뒤지면서 이 성적표가 유지될 경우 한국은 이란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에 2-0으로 이기고 조 1위를 차지했고, 이란도 이라크와 최소 무승부(0-0)를 거두면서 조1위를 차지해 서로를 비켜가는 대진표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양팀이 이번 대회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은 결승전뿐이었다. 만약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면 1972년 이후 47년 만의 결승무대 맞대결이자 당시 이란에게 우승을 내줬던 것을 설욕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란은 4강에 무난히 진출했지만 한국은 8강에서 도전을 중단했다. 30년 넘게 양팀의 동반 4강을 허락하지 않았던 아시안컵이었던 셈이다.

한편 호주 역시 UAE와 8강전에서 0-1로 패해 한국과 함께 동반 탈락했다. 4강에는 일본만이 동북아의 자존심을 지킨 채 이란, 카타르, UAE가 진출해 중동국가가 강세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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