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한 불자가 “A스님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미투 폭로를 하고 있다(왼쪽 위). 천지일보DB 
지난해 3월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한 불자가 “A스님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미투 폭로를 하고 있다(왼쪽 위). 천지일보DB 

성범죄 1/3 종교계서 발생
폐쇄적 분위기에 피해 은폐
실제는 최대 10배 달할 듯
종교적 위계 질서 이용한
‘그루밍 성폭력’ 폭로 잇따라
가해자 처벌 한계…“각성 필요”

성역처럼 여겨졌던 종교계의 방어막이 무너졌다. 거룩하게만 여겨졌던 성직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부패상을 보다 못한 종교단체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간 성직자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위신을 세워줬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이젠 반전이다.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의 권력화된 행태는 도마에 올랐고, 재정문제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음지에서 행해지던 성문제까지 미투 운동으로 터져나왔다. 천지일보는 지난해 사회 매체가 핫이슈로 다룬 주요 종교이슈 들을 되짚어보고 부패한 기득권 종교계가 살기 위해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봤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1. 천주교 수원교구 신도 김모씨는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봉사활동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모 신부로부터 강간당할 뻔했다. 한 신부는 어느 날 식당 문을 잠그고 김씨에게 강간을 시도했다. 강하게 저항한 김씨는 그 과정에서 눈에 멍이 들기도 했다. 김씨는 다음날 한 신부의 후배 신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그 어떤 조치도 뒤따르지 않아 사실상 성폭력 시도는 은폐됐다.

#2. B씨는 영적 아버지로 생각했던 C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어느 추석 전날 밤 C목사는 할 이야기가 있다며 B씨를 차 안으로 불러 강제로 B씨의 옷을 벗기고 제압해 성폭력을 가했다. 3년 동안 진행된 성폭력으로 B씨는 2번의 낙태수술을 받고 또 임신했다. 고통 끝에 B씨는 남편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것은 ‘간통죄’를 적용한 고소였다. C목사는 교단 총회로 찾아가 퇴직금, 사택 전세금, 교회 전세금을 빼서 미국으로 야반도주했다.

#3. D씨는 설교시간에 E목사로부터 “동물들 봐라. 암컷이 꼬리치지 수컷이 꼬리치냐” “아내는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정액을 뽑아내고 출근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 E목사는 성관계를 표현한 그림을 직접 그려서 달력 그림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D씨는 임신 38주차로 출산을 앞두고 순산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E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하게 됐다. E목사는 기도를 한다면서 만삭인 배를 종횡으로 쓰다듬고 주무르며 기도했다. 당시 D씨는 이상했지만, E목사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4. 2017년 7월 31일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와 경북지역 여러 사찰에 ‘주지승려 성폭행범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팩스가 전송됐다. 해당 문서에는 25세 여성이 경북 칠곡군 소재의 꽤 규모가 큰 사찰의 주지스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해 출산까지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문서에 언급된 스님은 조계종 내에서는 판사의 역할인 초심호계위원까지 맡고 있던 중요한 인물이었다.

지난해 사법계를 휩쓸고 문화·예술계를 강타했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종교계까지 번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 종교지도자들이 일으킨 성추문이 암암리에 소문으로만 도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피해 당사자들이 전면에 나서 성직자를 가해자로 지목해 논란이 됐다. 이에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한겨레, 경향 등 진보언론을 망라해 핫 이슈로 등극했다. 거룩하게 여겨졌던 신부, 목사, 스님 등 성직자들의 성추문 의혹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종교계 내 성폭력의 만연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종교계 미투’ 향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

종교계 성범죄 논란은 각종 언론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주류 언론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종교지도자들의 성범죄를 앞다퉈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성폭력 트라우마를 치료해준다며 3개월 간 환자를 성폭행한 유명 심리상담사인 목사를 단독 보도했다. 아시아투데이는 인천의 한 교회 목사가 미성년자인 중고등부·청년부 수십 명의 신도를 대상으로 10년간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이와 관련 MBN은 당시 해당 목사가 피해 여신도에게 보낸 메시지를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했다.

◆성범죄 많이 저지른 직업 1위 목회자

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 범죄발생 건수는 2만 9289건이다. 이 중 1/3가량이 종교계에서 발생했고, 개신교 성폭력 범죄는 4131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교별 소계 중 절반이 넘고 천주교의 약 4배, 불교의 1.7배에 달하는 수치다.

성직자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종교 내 의사구조가 폐쇄적인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일어나는 성폭력은 공식 통계보다 적어도 2~3배, 많게는 10배 이상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각 종교계 내에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단체나 모임 등이 활동하는 것만 보더라도 종교계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됐는지를 방증한다.

◆종교적 신뢰 ‘악용’해 기들이기 수법

그렇다면 종교계 내 성폭력은 왜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걸까. 개신교를 비롯해 불교, 천주교 등 종교마다 성폭력에 대해 내부적으로 명문화된 규율과 처벌·징계 규정 등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종교계에서 이 같은 규정에 따라 처벌받은 사례는 드물다.

그 이유는 우선 피해자들이 성직자를 ‘신의 대리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그루밍(grooming)’이라고 부르는데,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라는 의미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공동체 안에서 ‘원인 유발자’로 몰리거나 공동체의 평화를 깼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어 피해자들이 문제를 덮는 경우가 대다수다.

전문가들은 일반의 경우와 달리 종교기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양상은 영적인 위계질서가 강해 피해자는 순간적으로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가해자의 요구에 따른다고 했다.

◆전문가들 “종교별 제도적 장치 마련”

이에 종교계 내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각 교단 차원에서 성추행·성폭행 등의 근본 원인을 차단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대국민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며, 사제들의 성범죄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를 주교회의 내에 신설했다. 조계종은 성폭력 예방 교육 강화와 사건 발생 시 대처 등의 지침을 마련했다. 종교계 시민단체들도 나섰다. 여성인권 보호에 앞장서온 인사들은 각종 토론회를 열고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성폭력과 성추행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정작 중요한 사찰이나 교회를 이끄는 스님과 목사·신부들은 나서지 않았으며, 소수만 목소리를 내 종교계가 미투·위드유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관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와 관련 세계일보는 지난해 2월 26일자 사설에서 종교계 내부로까지 번진 미투의 병리를 치유하려면 사회 전반의 자정운동과 함께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구성원 내부의 각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는 3월 1일자 사설에서 “철저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있어야 하고, 폭로 이후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도 3월 3일자 사설에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강조하며, 심리적 안정을 위한 상담소는 물론 미투 이후 심리적 치유나 소송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이를 보장하는 법률도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법적 공방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성범죄의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것과 국회에 상정된 성폭력 근절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10여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것도 촉구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와 종교 공동체 속 피해자들의 심리적인 이유로 그동안 감춰졌던 종교계 성폭력이 계속해서 고발될 수 있을까. 각 교단이 이처럼 예방책과 징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성폭력 목회자 발생을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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