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에르미타시 박물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림은 ‘돌아온 탕자’이다. 렘브란트(1606∼1669)가 죽기 직전인 1668~1669년에 그렸는데 예카테리나 여제가 1767년에 구입했다.     

‘돌아온 탕자’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에 근거한다. 세리(稅吏)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죄인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는 것에 못마땅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써 말씀하셨다. 백 마리 양에서 다시 찾은 양 한 마리, 은전 열 닢 중 되찾은 한 닢, 그리고 돌아온 탕자이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유산을 미리 받아 고향을 떠났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는 못 견디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라고 말하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누가복음 15장 11~25절)

그러면 그림을 자세히 보자. 빛은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는 어둠으로 처리돼 있다. 

돌아온 탕자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닳아진 신발 뒤축으로 물집 잡힌 시커먼 발바닥을 드러낸 아들의 모습은 오갈 데 없는 처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붉은 망토를 두른 늙은 눈 먼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앞으로 몸을 굽히고 아들의 등과 어깨에 두 손을 대고 있다. 아버지 모습에는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옷의 색상도 비슷해 화합과 일치의 순간을 보여준다.   

한편 맨 오른편에 붉은 망토를 하고 두 손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사람은 큰 아들이다. 그는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가 매우 못마땅하여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아버지,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베풀다니요!” (누가복음 15장 29~31절)  

한편 그림에는 3명이 재회를 지켜보고 있다. 앉아서 가슴을 치고 있는 모자 쓴 남자, 뒤 쪽에 서있는 여자, 그리고 컴컴한 어둠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여인. 이들의 시선은 담담하다. 

‘돌아온 탕자’의 주제는 회개와 용서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렘브란트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림은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무절제하게 방탕하게 살다가 165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비참하게 지냈다. 더구나 1663년에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케를 잃고, 1668년에는 외아들 티투스마저 죽었다. 1669년 10월 4일에 렘브란트는 생을 마감한다. 10월 8일에 그는 조문객 없이 암스테르담의 어느 교회 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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