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기운 가고 ‘가래떡’ 기운 온다

▲ 가래떡과 빼빼로 제품. (사진제공: 오색농장, 롯데스위트랜드)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미국의 한 외신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다양한 기념일 때문에 사랑을 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나라’라고 지적할 만큼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다양한 기념일을 챙기고 있다. 밸런타인데이ㆍ화이트데이 등 수십 개의 기념일 중에서도 ‘11월’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날 ‘빼빼로데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크게 치러진다는 빼빼로데이, 하지만 최근 11월 11일을 차지하기 위해 ‘가래떡데이’가 빼빼로데이에 도전장을 내밀고 추격을 준비하고 있다.

◆ 시들해지는 빼빼로데이

▲ 빼빼로데이가 3일 앞으로 다가온 8일 유통업체는 각종 빼빼로데이 상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빼빼로데이 제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빼빼로데이는 1994년 부산에 있는 학교의 여중고생들이 1의 숫자가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 친구 간의 우정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친구에게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라는 의미에서 빼빼로를 선물로 주고받았던 게 지금은 ‘빼빼로데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적인 행사가 돼버렸다.

하지만 빼빼로데이가 점점 유명세를 타면서 이런 문화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대학생에게 빼빼로데이 등 다양한 기념일은 관련 업체의 상술로 만들어진 행사라는 인식이 커졌다. 2009년 한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 12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1.9%가 ‘빼빼로데이는 상술이 만들어낸 기념일에 불과’하다고 답할 정도로 부정적인 견해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직장인 한 모(30, 남, 충정로2가) 씨는 “개인적으로 빼빼로데이를 기념하는 것은 상업성 행사에 휩쓸리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현진(26, 여, 서대문구) 씨는 “어렸을 때는 챙겼지만 요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회사 동료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제품 특성상 일부 판매점이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팔리지 않는 선물들을 그대로 쌓아두었다가 다음 해에 되파는 행위가 적발되면서 위생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회사원 이경연(28, 여, 쌍문동) 씨는 “몇 해 전 빼빼로데이에 선물 받은 과자의 포장을 벗겼더니 초콜릿 부분이 녹았다 다시 굳은 것처럼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며 “그 후로는 빼빼로데이를 겨냥해 나오는 상품은 믿을 수 없어 사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국민의 부정적 인식 때문인지 빼빼로데이 덕에 매출에 도움을 받던 편의점 판매 신장률은 점차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광 훼미리마트도 2008년부터 빼빼로데이 관련 매출은 매년 늘었지만 신장률은 2008년 72.1%에서 2009년 28.8%로 오히려 줄었다.

◆ 농민 돕는 가래떡데이 인기↑

▲ 농림식품수산부는 2006년부터 11월 11일을 가래떡데이로 지정하고 해마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래떡데이의 마스코트 찰떡(왼쪽)과 궁합. (사진제공: 농촌정보문화센터)

이런 상황 속에서 농림수산식품부(농림부)는 2006년부터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가 아닌 ‘가래떡데이’로 지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가래떡데이를 알리고 있다.

농림부가 말한바 11은 한자로 십일(十一)라 쓰고 일(一)을 십(十) 아래에 붙이면 土가 되는데 이 흙(土)이 농업의 터전이 되는 것에 착안해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지정했다. 아울러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농민들의 수고를 기리고 국산 쌀을 소비하기 위해 ‘농업인의 날’ 주요 행사로 ‘가래떡데이’를 지정한 것이다.

가레떡데이는 2003년 안철수연구소에서 11월 11일에 가래떡을 먹는 행사에서 시작됐고, 농림부가 이런 좋은 취지를 살려 2006년부터 시작했다.

농촌정보문화센터 김귀영 소비홍보팀 팀장은 “처음 가래떡데이 행사는 국민에게 농업인의 날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며 “그래서 첫해는 1111미터 오색가래떡 뽑기 퍼포먼스를 펼쳐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8년부터는 여러 단체와 공동마케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의 사랑을 받게 됐다”며 “지난해에는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에서 자발적으로 가래떡데이를 알렸을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에서는 약 1700개 초등학교에 관련 홍보물을 보내 가래떡데이를 알렸고, 농협중앙회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가래떡을 나눠줬다. 또한 대전시, 경상북도, 청주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도 자체적으로 가래떡데이의 홍보를 도왔다.

이로써 지난해 가래떡데이에 가래떡 판매량은 2008년보다 460% 신장하고 올해는 관련 상품이 처음으로 출시되는 등 가래떡데이로 긍정적인 결과가 창출되고 있다.

가래떡데이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올해에는 이를 알리기 위한 더 큰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8일 대한영양사협회 전국학교영양사회는 올해 가래떡데이를 맞아 우리 전통음식인 가래떡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일에 협회 영양사들은 가래떡 및 가래떡을 활용한 식단을 소속 학교에 제공키로 했다.

이뿐 아니라 농림부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쌀 박물관에서도 가래떡데이와 관련된 행사가 진행 중이며,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11월 11일을 가래떡데이로 지정하자는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래떡데이 문화를 올해 처음 접한 최명숙(53, 여, 홍은동) 씨는 “빼빼로보다는 쌀 수요를 높여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가래떡데이가 더 의미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쌀로 만든 가래떡이 건강에도 더 좋기 때문에 가래떡데이 문화가 더 확산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아직 가래떡데이가 빼빼로데이처럼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귀영 팀장은 “처음 5년이 가래떡데이를 알리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5년간은 가래떡데이 관련 상품을 개발해 쌀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기술이라든지 굳지 않는 떡을 만드는 기술 등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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