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울시 교육청이 “상호존중과 배려로 나아가는 수평적 조직문화의 첫걸음으로 교사의 호칭을 직급이나 선생님 대신 ‘님’ ‘쌤’ ‘홍길동 프로’나 ‘제임스’처럼 영어 이름을 쓰자”는 뜬금없는 ‘수평적 호칭제’ 정책을 발표해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조차 자신을 ‘조쌤’이라고 불러달라고 기자들에게 주문했다. 파장이 확산되자 조 교육감은 페이스북을 통해 “수평적 호칭제는 학생이 선생님에 대해 쌤이나 님으로 부르자는 것은 아니다. 교직원 간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바꾸자는 것이다”고 했다. 교육감 자신은 누가 “조쌤”이라고 불러도 교육감이란 직책과 위신에 변화가 없으니 그런 호칭을 권장할 수 있다.

그러면서 교육청은 기자들에게 배포한 수평적 호칭제 보도자료에 ‘교육감님 말씀’이라고 수직적 존칭을 쓰고 있다. 진보와 보수 교원 단체들조차 ‘탁상공론’이라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서울교총은 제자와 스승의 상호존중 문화를 해친다고 비판했고, 전교조도 비표준어에 교사를 얕잡아보는 호칭이라 권장할 용어가 아니라고 밝혔다. 교육청에서 호칭을 정해주는 자체가 교육청이 권위주의라는 것을 나타낸다.

필자가 학교에 근무했던 3년 전에도 동년배의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는 편하게 ‘쌤’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쌤’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거리감이 없어져 나온 호칭일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교권 추락으로 생긴 축약어에 불과하다. 연배의 교사들은 ‘꼰대’ 소리 듣기 싫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학생들의 ‘쌤’이란 호칭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배경을 모른 채 학교에서 ‘쌤’이란 호칭이 자주 사용된다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호칭을 공식화하자고 교육감이 나서서 정책으로 발표하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다.

‘쌤’도 모자라 대기업에서 수평적 용어로 사용하는 ‘프로’라는 용어까지 끼워 넣기 했다. 감히 말해 저따위 정책을 실무자가 만들어서 결재를 올렸다고 하더라도 중간 단계에서 누군가 걸렀어야 한다. 최종 결재권자인 교육감마저 동조하고 기자들 불러놓고 시범학교 지정해 추진하자고 발표하는 것을 보니 교육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이 정도도 거르지 못하고 반대도 하지 못하는 교육 공무원들이 교육정책을 맡고 있으니 학교가 붕괴되고 교권이 추락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지금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전쟁터다. 안하무인의 학생들이 교사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탓에 간식 잔뜩 사 먹이며 어르고 달래 수업을 하는 게 현실이다. 교권을 제대로 확립시켜 학교를 정상화 시킬 방안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쌤’이란 호칭을 공식화시키는 정책은 교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교육 정책을 제안할 때는 학교 현장의 소리를 먼저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책상에 앉아 특정 단체의 목소리만 듣고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으니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지금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의 수평적 문화는 교사와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서로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사전에 없는 축약어나 기업에서 쓰는 외래어를 차용한 호칭을 쓴다고 수평적 문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학생에게 교사는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할 수직적 관계여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수직적 관계가 없다면 학습효과가 떨어진다. 그 수직적 관계가 무너져 지금의 학교 붕괴 사태까지 왔다. 일부 교사가 문제가 있다고 대다수 교사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 문제 학생이 차고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들을 지도할 교사의 권위를 세워야 공교육이 살 수 있다. 오죽하면 학부모들 사이에 학교 무용론마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걸 교육청만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발표해 교권을 한 계단 더 추락시킨 공로가 크다. 교육감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조차 구분을 못하니 한심하다 못해 개탄스럽다.

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학교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청이 해야 할 공교육 살리기는 안중에도 없이 설익은 정책, 인기 영합적인 코미디 같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교사가 갑, 학생이 을인 학종과 수시를 폐지하면 교사와 학생이 수평적 관계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교육부, 교육청을 없애야 학교가 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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