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손혜원 의원과 젊은빙상인연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빙상계 성폭력 추가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손혜원 의원과 젊은빙상인연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빙상계 성폭력 추가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1

젊은빙상인연대, 빙상계 성폭력 추가 폭로

“피해 성폭력 사례만 6건 확인… 전 교수가 은폐”

 

심석희 폭력 고발 기자회견 저지했다는 의혹도

전 교수 “알지 못하는 일” 부인… 논란 커질 듯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피해 선수들은 자신의 신원이 공개될 경우 빙상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전명규 사단’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할까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습니다.”

젊은빙상인연대와 손혜원 국회의원이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성폭력 피해 추가 폭로에 나선 가운데 빙상계 성폭력 은폐의 배후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인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지목됐다. 전 교수가 빙상계를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의원과 빙상인연대는 이날 약 2개월간 빙상계의 성폭력 의혹을 접수, 사실관계를 조사한 결과 총 6건이 피해사례가 파악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두려워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실명도 공개되지 않았다. 손 의원과 빙상인연대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각종 증언과 증거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추가 피해 사례를 조사했다.

손 의원은 자신이 만났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한 명의 사례를 공개했다. 손 의원에 따르면 빙상선수 A씨는 10대 때 한체대 빙상장에서 스케이트 강습을 받던 중 빙상장 사설강사이자 한체대 전 빙상부 조교인 한 코치로부터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해당 코치가 훈련 도중 자세를 교정해준다는 핑계로 강제로 안거나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또 해당 코치는 국외 전지훈련 중에도 A씨에게 강제 포옹과 강제 입맞춤을 계속 했고, ‘밖에서 만나서 영화 보러 가자’ 등의 연락을 하기도 했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코치는 폭언을 퍼부었다.

뿐만 아니라 A씨는 해당 코치가 국대 선발과정에서 경기력에 크게 지장을 주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당시 충격으로 스케이트를 벗었다.

손 의원은 이러한 다수의 빙상계 성폭력 사건 은폐의 배후에는 전 교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전 교수와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 B씨가 나눈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손혜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빙상계 성폭력 추가폭로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추가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19.1.21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손혜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빙상계 성폭력 추가폭로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추가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19.1.21

손 의원이 공개한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보면 B씨는 ‘피해자는 저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백번씩 하고 잠도 못 자는 것도 저인데 가해자란 사람이 죽겠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 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전 교수는 ‘네가 빨리 벗어나길 바래. 그것이 우선이야’라는 짧은 답변을 했다.

이에 대해 손 의원은 “전 교수는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로부터 전달받아 충분히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가해자는 여전히 빙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 교수가 사건의 은폐에 관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의 빙상선수들은 전 교수가 자기 측근의 성폭력 사건 은폐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입은 빙상선수들이 증언에 소극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며 “빙상계 적폐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전 교수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빙상인연대는 성명문을 통해 빙상연맹이 친 전명규 단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빙상인들과 빙상 팬들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정감사로 전 교수가 오랫동안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비정상의 상징’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정상화’되리라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그 모든 기대는 헛된 바람으로 끝났다. 빙상연맹은 ‘친 전명규 관리단체’로 변신하며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했고, 한국체대는 전 교수에게 고작 감봉 3개월의 하나 마나 한 징계로 면죄부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자리에서 ▲체육계 성폭력 폭로에 대한 전수조사 ▲한체대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 ▲대한체육회 수뇌부 총사퇴 등을 공식 요구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심 선수의 폭로로 촉발된 빙상계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날 손 의원과 빙상인 연대는 빙상계 성폭력 은폐에 전 교수가 중심에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전 교수는 누구일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전 교수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쇼트트랙 남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9년부터는 한국빙상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이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 남자 쇼트트랙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지난 2017년 빙상연맹으로 복귀했다.

전 교수는 김기훈, 김동성, 김소희, 전이경, 안현수 등 다수의 인재를 발굴하고 메달리스트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2002년 동계올림픽 당시 안현수 특별 차출 논란으로 빙상계 파벌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빙상연맹 부회장)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천지일보 2019.1.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빙상연맹 부회장)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천지일보 2019.1.21

특히 지난해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전 교수가 심 선수의 폭행 고발 기자회견을 저지하려 했다는 녹취 파일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손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심 선수의 폭행 피해 고백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설지 모르니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겁을 줘서 동조하지 못하게 하라’는 전 교수의 음성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번 심 선수 성폭력 사건 역시 전 교수가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사회를 포함한 일부 스포츠계에서는 전 교수를 빙상계에서 ‘영구제명’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빙상인연대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박지훈 변호사는 한 매체를 통해 “수개월 전 성폭행 사건을 인지했을 때부터 전 전 교수 측에서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왔다”며 “압박은 변호사 선임 등의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 시작됐고, 이번 폭로 직전까지도 계속됐다”고 밝혔다. 심 선수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코치는 전 교수의 가장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최근 전 교수는 오는 3월부터 예정이던 연구년(안식년)을 박탈 당했다. 한국체대가 긴급 교수회의에서 ‘한국체대 가혹행위 및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며 전 교수의 연구년 자격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체대는 피해 학생과의 격리조치를 취하는 한편 전 교수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는 대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추가 징계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 교수는 자신과 관련된 성폭력 은폐 의혹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이라며 부인하고 있어 전 교수와 빙상계 성폭력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빙상연맹 부회장)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빙상연맹 부회장)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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