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우주개발에 앞서나간다고 자신했던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의 충격에 빠졌다. 미국도 1958년 1월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고, 그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했다. 그러나 1961년 4월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해 대기권에 진입하자 미국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그 후 소련은 1966년 루나 9호를 달 착륙에 성공시킴으로써 또 다시 승리를 구가했다. 하지만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에서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내딛음으로써 미국이 우주개발의 제1인자 자리에 오르게 됐다. 

한편 중국은 우주경쟁에서 후발 주자였다. 중국은 1970년 첫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 발사에 성공했고, 2003년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신의 배) 5호를 발사했다. 2011년에는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1호를 쏘아 올렸으며, 2012~2013년에는 선저우 9호와 10호가 톈궁 1호와 도킹에 성공해 명실상부한 우주정거장 시대를 열었다. 또한 중국은 2013년 12월 최초의 무인 달 탐사 차량인 위투(玉兎·옥토끼)를 탑재한 달 탐사위성 창어(嫦娥·달의 여신) 3호를 달에 착륙시킴으로써 미국, 러시아에 이어 달 착륙에 성공한 세 번째 나라가 됐다. 

드디어 금년 1월 3일 ‘창어 4호’가 이날 오전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고 중국중앙(CC)TV가 보도했다. 이로써 중국은 세계 최초로 달 전면과 뒷면에 모두 착륙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금까지 달의 뒷면은 지구에서 관측이 불가능했고, 별도의 위성장치가 없으면 통신이 두절돼 탐사 시도를 못했는데, 중국은 통신위성을 별도로 쏘아 올리는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했기 때문에 ‘창어 4호’의 쾌거는 더 의의가 컸다고 볼 수 있다. 미국 CNN방송은 ‘창어 4호’의 성과는 중국이 세계의 우주 강국으로 가는 거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우주개발은 당사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위상과도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벌써 우주로의 영토 확장, 우주의 군사기지화, 우주산업이 거론되고 있다. 15~18세기 첨단 항해술로 영토를 확장했던 스페인, 포르투갈처럼 이제 우주탐사로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고 희귀자원을 획득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중·러 3국은 우주군 창설도 서두르고 있다. 우주 발사체는 미사일 기술과 긴밀히 연관돼 있고, 특히 위성항법시스템(GPS)은 군사전략적 문제와 직결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앞다퉈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은 독립된 ‘우주군’을 편성하겠고 발표했다. 바야흐로 우주는 미·중·러 3국의 세력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1967년 유엔은 ‘우주는 평화적으로 이용돼야 한다’는 세계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을 체결했으므로 강대국들에 의한 우주에서의 첨단무기 군사기지화는 마땅히 저지돼야 한다. 다만 인류 번영을 위한 자원채취나 신비로운 우주로의 여행은 기대해 볼 만하다. 

이제 우주개발 패권경쟁은 전통적인 미국-소련 구도에서 미국-중국-러시아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와 일본도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 한·미 미사일 지침인 ‘사거리 800㎞를 초과하는 고체연료 로켓개발 제한’에 걸려있다. 우리는 자체기술로 개발한 발사체를 2023년 약 800㎞ 상공에 발사하게 돼있다. 그런 발사시험으로 우리 고유의 위성항법시스템과 드론 사업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달 탐사 등 우주개발의 꿈과는 요원한 얘기일 뿐이다. 정부는 미국과 고체연료 제한 조항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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