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일 태릉선수촌을 방문, 다음 주 개막될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막판 훈련 중인 대표선수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의 정례적인 방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새벽 일찍이 방문해 여자체조 선수들과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 여자핸드볼 선수단에겐 “영화까지 나왔는데 잘하라”고 당부했다. 남자농구팀 유재학 감독에게는 미 NBA에 진출한 중국선수의 출전 여부를 물은 뒤 “이번에 안 나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는 “그럼 해볼 만한데, 뭘 그래…”라고 말했다. 선수들과의 아침식사에선 “옛날엔 최대 목표가 아시아 1등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1등”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태릉선수촌 방문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선수들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대통령이 한 이날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웬만한 체육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그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태릉선수촌을 방문했던 지난 시절 역대 대통령들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태릉선수촌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66년.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이 도쿄올림픽에서의 부진 이후 “대표선수들의 합숙과 훈련이 한 곳에서 가능한 종합적인 선수촌 없이는 성공적인 경기력 향상이 불가능하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설득해 마련했다.

총 10만여 평의 부지 위에 연건평 2만여 평의 각종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이곳에 입촌하는 선수들은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대회 등 국제 종합대회를 비롯해 각종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집중적인 훈련을 한다. 태릉선수촌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이후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 역할을 훌륭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은 태릉선수촌을 한국 체육의 상징물과 같이 여겨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대회에 즈음해 방문, 선수들을 격려하곤 했다. 그러나 대통령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각기 달랐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태릉선수촌 방문 횟수와 격려방법 등에서 다르게 나타났고 이러한 차이가 한국스포츠의 정책 방향에도 반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태릉선수촌을 설립하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건국 사상 처음으로 레슬링 양정모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디딤돌을 마련하는 등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육사 재학시절 축구선수로도 활약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출정식 참석을 시작으로 재임기간 중 수시로 선수촌을 방문해 ‘체육대통령’의 이미지를 남겼다.

대한체육회장과 체육부 장관을 거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스포츠에 대한 이해는 깊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만큼은 태릉선수촌에 대한 애착을 갖지는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깅을 즐겼으나 체육 정책 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체육부를 문화부에 흡수시켜 체육인들의 원성을 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체육에 대해 홀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태릉선수촌을 단 한 번만 방문, 전임 대통령들과 좋은 대조를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두 차례 태릉선수촌을 찾았지만 스포츠에 대한 기조는 양 김 전 대통령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스포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약해졌지만 한국 스포츠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꾸준한 성적을 올렸다. 이는 전통적 강세 종목들인 양궁과 레슬링 유도 태권도 배드민턴 사격 등에서 과학적이고 집중적인 훈련과 노력을 한 결과였다.

태릉선수촌은 여러 대통령을 거치면서 많은 운영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선수촌장이 자주 교체되고 신세대 선수들의 생활에 맞지 않는 낡고 부족한 시설 등이 현안으로 지적받고 있다.

현대그룹 사장재직 시절인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한수영연맹과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및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을 지낸 ‘스포츠 프렌들리’ 이명박 대통령은 태릉선수촌이 한국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자 산실로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관심을 많이 쏟아주었으면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