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6일 오전 6시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 강제집행이 진행된 가운데 피해 주민들의 모습. (제공: 빈곤사회연대) ⓒ천지일보 2019.1.16
2016년 4월 26일 오전 6시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 강제집행이 진행된 가운데 피해 주민들의 모습. (제공: 빈곤사회연대) ⓒ천지일보 2019.1.16

청량리4구역·월계2동 실사례

“세입자들 향해 소화기 난사”

“신고도 없이 집행용역 투입”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삽시간에 번지며 철거민과 경찰의 생명을 삼켜버렸다.

모두 6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당한 ‘용산참사’는 강제퇴거 집행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1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재개발지역에서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불법 강제철거’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용역들은 오함마와 빠루로 집 앞 장애물 등을 다 때려 부수고 세입자들을 향해 소화기를 난사하며 돌진했습니다. 이들은 쓰러진 노인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서울시에서 파견된 인권지킴이는 200m 떨어진 곳에서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0일 청량리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진행된 강제집행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청량리 4구역은 동대문구청이 지난 2014년 9월 사업시행인가를 내고, 2015년 1월 관리처분인가를 허가한 재개발 지역이다.

구청은 청량리 4구역 재개발 사업을 통해 청량리 역세권이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청량리 4구역 주민들은 주민과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재개발 사업과 강제이주,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주민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6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6

백 위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용역이 동원된 강제집행은 불법이 난무했다. 2016년 12월 1일, 2017년 3월 6일엔 경비배치신고 인원과 달리 배가 되는 수가 집행에 동원됐다. 2017년 5월 18일엔 경비배치신고도 없이 200여명에 달하는 용역이 투입돼 집기를 부수는 등 강제철거를 감행했다. 2017년 11월 28일에는 집행관도 없이 용역 80여명이 동원됐다.

백 위원장은 “생존·주거·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개발지구 주민들은 국민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개발지구의 폭력과 비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 건설자본과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오히려 주민들을 불법 행위자로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코·골반·갈비뼈 골절, 척추손상, 뇌진탕에 의한 단기기억상실, 열상 등 전치 2~10주의 부상. 이는 김진욱 토란 월계인덕마을 위원장과 마을 주민들이 강제집행 과정에서 당한 피해다. 악몽같이 끔찍했던 사건은 지난 2016년 4월 26일 오전 6시에 벌어졌다.

김 위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는 불법 강제집행과 집단폭행이 자행됐다. 법원은 대상 건물의 2층과 3층, 옥탑방에 대해 강제집행을 허가했지만 집행용역 300여명은 명도소송 중에 있던 1층 이주대책위원회 사무실 셔터 문을 부수고 무단으로 침입했다.

김진욱 토란 월계인덕마을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6
김진욱 토란 월계인덕마을 위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6

용역이 사무실 집기들을 부수며 강제집행을 시작하자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변 주민과 자영업자 30여명은 필사적인 저항에 나섰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고 명찰도 없었던 ‘미배치 용역’이라 불리는 자들은 주민들에게 소화기를 뿌리며 호흡 곤란을 일으킨 데 이어 주먹과 발, 소화기, 쇠파이프 등을 사용해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내부로 진입한 용역은 주민들을 제압해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주민 24명이 부상당했고, 김 위원장도 오른쪽 갈비뼈가 골절되고 앞니 3개가 부러졌다.

오전 6시부터 시작해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제집행에서 주민들의 비명소리는 건너편 아파트 주민들도 들을 수 있었다. 피투성이가 돼 차례로 끌려 나온 주민들이 길바닥에 쓰러져가도 서울 북부지원 집행관은 집행을 멈추지 않았다.

끌려나온 주민들이 112에 신고해 10여차례 구조를 요청했으나, 집행이 끝날 때까지 경찰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친 주민들은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119구급차로 병원에 호송될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서울시민도, 노원구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익사업인 재건축 정비사업에서 치워버려야 할 방해물일 뿐….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폭력과 비인권적인 집행은 좀 더 교묘해졌을 뿐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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