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 ‘찬밥’ 없앤 스님… “음식, 어머니 정성 필요해요”

 

▲  우관스님이 “인간만이 주인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지난달 16일 수원에 있는 봉녕사에서는 ‘2010 제2회 사찰음식 대향연’이 열려 풍성하고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그 가운데서 ‘사찰음식과 환경문제’라는 사찰음식 강의가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강사는 이천 감은사 주지이고,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 원장이며, 전국비구니회 섭외국장의 소임을 맡고 있는 우관스님이었다. 스님의 얼굴은 환하고 표정이 밝았으며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사찰음식, 환경문제 해결
스님은 “사찰음식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원스런 목소리로 초반 수강생들의 기선을 제압했다. 스님의 강의는 쉽고 명쾌했다.

스님은 사찰음식에 대해 “특별한 양념 없이 제철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만든다. 그리고 양념의 주재료인 간장이나 된장 등은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몸에 해로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완전채식인 사찰음식은 인체면역력을 높여주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며, 소화와 배출이 잘 된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농사를 직접 짓는다. 스님이 농사를 처음 지을 때는 밭에 지렁이가 거의 없었다. 농사를 지은 지 3년이 되자 밭에 굵은 지렁이가 많아졌다. 스님은 “밭에 지렁이가 살 수 없었던 것은 땅이 죽었기 때문”이라며 유기농·친환경 농사법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

스님의 이야기는 거부감이 없고 이해가 잘됐다. 강의는 재미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스님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좋은 식재료를 살 것을 권장했다. 생산자가 좋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찾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라며, 스님은 소비자가 그런 제품을 사지 않는다면 생산자는 질 낮은 상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좋은 품질의 제품으로 가격경쟁을 통해 적정한 가격이 될 것이라 말했다.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면 그 대신 적은 양을 구입하라고 했다. 그러면 소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면서 나 혼자라도 먼저 의식수준을 높이라고 했다. 이런 행동들이 쌓이면서 전체 사회구성원의 의식수준도 높아지고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웰빙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스님은 강조했다.

▲ 백김치 (사진제공: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
스님은 사찰음식이 단순히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쓰지 않는 채식이 아니라면서 자연환경과 더불어 나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를 생명으로 여겨 정갈한 음식으로 몸을 지탱하는 양약으로 삼는 것이고, 조그마한 실천들이 쌓여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강의가 끝난 후 스님에게서 명함을 건네받았다. 스님은 경기도 이천의 한적한 시골 도락산 자락의 조그만 사찰의 주지였다. 이천은 물 좋고 토양도 좋아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쌀로 유명한 고장이다. 스님의 음식솜씨가 이천 쌀과 연관이 있을까? 더불어 우관스님이 직접 농사를 짓고 사는 사찰의 살림이 궁금했다.

스님의 인터뷰 승낙을 받고 감은사로 향했다. 사찰에 도착하자 맑고 신선한 공기가 가슴을 시원케 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사찰은 마음 또한 포근하게 했다. 우관스님은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못생긴 삶은 고구마를 내왔다.

스님은 봉녕사 사찰음식 강의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시원하고 막힘도 거침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갔다.

출가, 수행, 깨달음
스님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접했다. 가정은 부유했다. 여느 청소년들처럼 호기심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인 여고 1학년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친구가 건네준 책 한 권이 바로 그 전환점의 시작이 됐다. 그 책은 다름 아닌 청담스님이 쓰신 <마음>이라는 책인데 그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불교에 빠져든 스님은 스물네 살에 70세의 비구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는 지극 정성으로 할머니뻘인 은사스님을 모셨다.

스님은 출가 후 공부에 전념했다. 봉녕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봉녕사 연구생과정 1기생으로 수료했다. 훌륭한 강사가 되겠다는 각오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인도유학을 떠났다. 델리대학에서 6년 가까이 공부해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스님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혼자 등반하게 된다. 6년 동안 눈을 보지 못했던 스님은 히말라야를 통해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을 얻게 됐다. 수행이 뒷받침이 안 된 지식은 오히려 사람을 교만과 가식과 권위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스님은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미얀마에서 수행한 스님은 세상 이치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훌륭한 강사가 되겠다던 스님은 석·박사 학위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제정사 양로원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원주소임을 살면서 100여 명의 할머니의 식사를 챙겼다. 스님이 양로원에 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찬밥’을 없애는 것이었다. 스님은 “음식이란 것이 특별한 재료와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때에 따듯한 밥을 해 먹이겠다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정성이 가장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또 스님은 자제정사 2년간의 생활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 은사스님과 함께 경북 영양의 연화사로 수행에 들어갔다. 수행을 통해 스님은 새로운 경지를 맛보게 된다. 스님은 자유로움과 감정의 풍요로움을 통해 수행생활이 유유자적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생활도 1여 년 정도 지나자, 연로한 은사스님의 권유로 이천 감은사로 오게 됐다. 은사스님은 감은사에 온 지 3달 만에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은사스님이 입적한 후 그분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진정한 수행자는 홀로 자유로움을 찾고 평안을 얻은 자가 아니라 자기가 깨달은 것을 중생에게 나눠주고 함께 더불어 고민하고 나아가 피안의 세계로 이르도록 이끌어 주는 자가 참 수행자라는 것을 안 것이다.

음식의 맛, 정성이 가장 중요

▲ 모듬 야채 절임 (사진제공: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
스님이 사찰음식 전문가로 세상에 이름이 나게 된 것은 지난해 봉녕사에서 열렸던 ‘2009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 때문이다. 스님은 사찰음식대향연이 열리기 3일 전에 봉녕사로부터 갑작스레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봉녕사로부터 ‘사찰음식대향연에 사찰음식전문가로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은 스님은 하루만 말미를 줄 것을 봉녕사 측에 말했다고 한다. 스님은 평소 친분이 있는 주변 사람들을 급히 소집해 의견을 듣고는 사찰음식대향연에 참가하기로 했다.

평소 사찰음식이 화려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스님은 사찰에서 흔히 먹는 평범한 식단을 준비했다. 4계절에 맞는 밥을 주제로 해서 12가지 사찰밥과 4가지 사찰죽을 전시하기로 했다. 평소 은사스님의 식사를 위해 정성껏 준비했던 그 마음 그 정성 그대로 준비했다. 결과는 기존의 사찰음식 전시와 다른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게 됐다.

▲ 통배추 토마토 김치  (사진제공: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
우관스님은 사찰음식 하는 것을 누구에게 정식으로 배워본 일이 없다고 한다. 다만 행자시절부터 절의 살림을 익히고 은사스님을 봉양하면서 배운 것이 전부라고 한다. 스님은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맛있게 공양할까 하는 즐거운 고민과 지극한 정성이 음식 맛의 비법인 것을 터득한 것이다.

우관스님은 자신이 사찰음식전문가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겸손을 보였다. 다만 스님이 계획하는 일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님의 꿈은 아름다운 인연들이 모여 사는 수행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곳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 사상을 공유하고 삶을 논하는 터전이다. 그러나 스님은 서두르지 않는다. 준비를 차근차근 하다보면 반드시 때가 찾아옴을 믿는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독재로 움직이면 오래 못 간다는 것이 스님 판단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며 개인의 취미와 소질은 살려가면서 서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며 칭찬해주는 수행공동체, 자연과도 일체되고 인간만이 주인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 우관스님이 유기농ㆍ친환경으로 재배한 농산물로 직접 만든 된장ㆍ고추장ㆍ간장 등 장류를 살펴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우관스님은 2007년도에 은사스님과 함께 이천 감은사에 왔다. 은사스님은 그해 9월에 돌아가셨다. 은사스님이 떠난 절은 쓸쓸했다. 그러나 우관스님은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어려운 주변을 돕기 위해 김장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 사찰 근처 밭에 배추를 심고 김치를 담갔다. 그것을 팔아 지역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이후부터는 사찰의 살림살이도 어렵지만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장학금을 나눈다고 한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마하연 사찰음식문화원’도 이름에 걸맞게 차와 대체의학, 도자기 등이 함께 어우러진 최고의 음식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과 협력해 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스님은 이 세상에 부러운 것도 미련도 아쉬운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삶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만을 위해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스님은 어느 사람이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는 대화와 협력, 수행공동체 만드는 일도 함께할 수 있음을 밝혔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