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바라나이다” 선조들의 마음 담긴 민화
“복 바라나이다” 선조들의 마음 담긴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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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안의 모습 ⓒ천지일보 2019.1.14
전시실 안의 모습 ⓒ천지일보 2019.1.14

백수백복-조선시대 민화展
책거리, 모란도 등 종류 다양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민중들의 바람을 담은 ‘민화(民畵)’. 삶의 평안과 속세에서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길상(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조짐) 문화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우리 조상이 이야기를 담은 민화에 대해서 알아봤다.

◆조선 후기 유행

민화는 조선 후기 민간계층에서 유행한 그림을 일컫는다. 민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8~19세기로 추정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민화는 19~20세기 초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선 후기인 18세기는 민간계층의 문화가 융성해졌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 이후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며 농업생산량이 증가하고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중인 계층의 경제력이 강화되고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약화됐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중인 계층을 중심으로 왕실과 사대부 문화를 모방한 형태로 그림의 유통이 확산됐다. 민간에서 제작과 소비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그림, 민화가 성행하게 된다. 풍속화가 상류 계층에 의한 민간 생활상을 주제로 한 그림이라면, 민화는 민간의 회화였다.

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로, 조선의 국운이 다하던 19~20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융성했다. 전쟁을 거친 후 현세구복(現世求福) 성격의 도교적 길상 문화가 확산됐고, 학문으로서의 도가보다는 인간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민간신앙 성격이 짙었다. 불안감이 클수록 사람들은 기복(奇福)을 통해 삶의 안녕을 원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은 민화에 깊게 투영됐다.

길상과 벽사 용도의 그림은 문배(액을 쫓고 복을 받기 위함)와 세화(새해를 축원하는 그림)가 있었다.

봉황도 19세기 종이에 채색(출처: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아트홀) ⓒ천지일보 2019.1.14
봉황도 19세기 종이에 채색(출처: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아트홀) ⓒ천지일보 2019.1.14

◆길상의 의미 담아내

궁중에서 제작된 세화(歲畵,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는 새해를 송축하는 의미로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용도로 활용됐고, 이후 양반층으로 확대되어 세시풍속으로 전해져 왔다. 세화는 조선 초 중기까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민간 계층의 경제력 성장과 신분 상승 등의 사회 변화와 맞물려 널리 퍼지게 됐으며 왕실과 사대부 문화를 모방한 형태로 민화 속에 정착했다.

민화는 책거리, 화조도, 서수도, 모란도, 호작도, 운룡도, 문자도, 십장생도, 봉황도 등 다양한 소재를 아우르고 있다. 민화는 장수와 다산, 출세, 가정의 화목, 액막음, 부귀영화와 같은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왕실에서 제작한 세화에서 신선도, 선녀도 같은 도교적 성격의 소재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는 왕실의 평안과 안정을 기원하고자 함인 것처럼, 장수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에는 신분의 귀천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화는 민간의 그림이었지만, 민간에서만 소비되던 그림은 아니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시는 ‘백수백복 百壽百福-조선시대 민화전’은 이달 28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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