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상가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세운상가, 장안평, 용산전자상가 등 3대 거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 ⓒ천지일보 2019.1.1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상가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세운상가, 장안평, 용산전자상가 등 3대 거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 ⓒ천지일보 2019.1.12

서울 중구 ‘공구거리’

최근 재개발 본격화

“95% 공구상 흩어져”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40년 동안 어떻게 지켜온 가겐데… 착잡한 심정을 어떻게 다 말하나요.”

서울 중구 청계로에서 1980년도부터 공구상가를 운영해온 강태구(가명, 60, 남)씨는 19살 시절부터 용접 산업에 뛰어들었다.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가난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살기 위해 뛰어든 용접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작업 중 용접 부분을 만져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적이 수십 번이었다. 그렇게 이곳 저곳을 떠돌며 용접 일을 하다 40년 전, 현재의 상점을 얻게 됐다. 상점을 운영하며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번 돈으로 딸과 아들을 어엿하게 키워냈다. 하지만 강씨의 삶이 깃든 가게는 얼마전 무너졌다. 

강씨는 “갑자기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더니 퇴거 명령을 받았다”며 “얘기를 듣자마자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부터 났다”고 하소연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을 나와 청계천을 따라 걸으면 수표교부터 관수교 일대까지 공구상 530여곳이 모여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70~198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만명이 넘는 제조업 장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는데 어느샌가부터 ‘공구거리’라 불리게 됐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에 이주 대책 마련, 철거 반대 등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천지일보 2019.1.1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에 이주 대책 마련, 철거 반대 등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천지일보 2019.1.12

최근 공구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공구거리는 지난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재정비촉진지구로 설정됐는데, 경제 악화 등으로 진척이 없던 재개발 사업이 최근 속도를 내면서 본격화 됐기 때문이다. 시는 낡은 가게들을 쓸어내고 오는 2023년까지 해당 부지에 26층 주상복합 아파트 등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로 인해 최장 60년에서 최소 5년 이상 공구거리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오랜 터전을 잃고 흩어지게 됐다. 시민단체 ‘리슨투더시티’ 조사에 따르면 재개발 이후 400개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

공구거리에서 30년간 상점을 운영하다 최근 인근으로 이전한 풍원산업 박교현(50, 남) 대표는 “재개발 되면서 공구거리의 95%의 공구상들이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며 “구로구나 문래동 등 비슷한 제조업 지구 인근으로 이주한 상인도 있지만, 자금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외곽으로 간 상인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골목에서 풍원산업 박교현 사장이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골목에서 풍원산업 박교현 사장이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

그는 “그나마 인근으로, 외곽으로 간 상인들은 다행이지만 갈 곳이 없어 장사를 접은 상인도 많다”며 “그만둔 상인들은 대다수 연세가 많은 70~80대”라고 덧붙였다.

40년간 공구거리에서 각종호스 등의 물건을 판매했다는 부림산업 심의진(60, 남) 대표는 가게를 잃은 상실감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심 대표는 이번 주말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하고 이주해야 한다. 이미 가게의 물건은 정리돼 옮겨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청계천 공구상가는 미래유산으로 따지면 엄청난 곳인데 단순히 개인의 이득을 위해 주상복합으로 만드는 게 안타깝다”며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세계적인, 문화적인 가치로 남기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씨와 같이 대다수 상인들도 재개발을 멈추고 이 지역을 제조산업 문화특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청계천 인근에선 이를 촉구하며 36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고,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 자리잡은 공구 상인과 소규모 제조업체 장인, 이들과 연대하는 예술가 등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관수교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전봇대에 상인 이주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이 붙어있다.세운상가, 장안평, 용산전자상가 등 3대 거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천지일보 2019.1.1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2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구거리. 전봇대에 상인 이주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이 붙어있다.세운상가, 장안평, 용산전자상가 등 3대 거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꼽힌다.ⓒ천지일보 2019.1.12

공구거리에서 2대에 걸쳐 60년간 상점을 운영해온 평안상사 홍성철 대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것은 헐어내고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당장 보기에는 좋겠지만, 결국 원주민은 쫓겨나고 후세들에게는 또 다시 콘크리트 더미만 안겨주는 것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까지도, 담벼락 상처까지도 그대로 보존해 그들만의 역사와 자랑이 되고 전세계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처럼 우리 청계천도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면 볼거리는 물론 중구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공구거리 재개발에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공구거리 골목을 지나고 있던 이아현(25, 여)씨는 “아빠가 공구를 좋아하셔서, 어린시절 아빠를 따라 공구거리 난장에 펼쳐져 있던 공구를 지켜보곤 했다”며 “최근에도 종종 친구와 와서 둘러보고 했었는데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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