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자두야>를 그리는 이빈 작가는 만화가 삶이 끝날 때까지 자두를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선혜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만화가 삶을 다할 때까지 자두 볼 수 있어요”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자두는 사계절 중 겨울에 유독 약하다. 지금이야 난방시설이 잘 갖춰져 뜨거운 물이 철철 나올 뿐더러 씻고 나와도 따뜻한 실내 공기로 ‘으슬으슬’하게 춥지 않지만 자두가 살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씻고 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자두는 겨울이면 씻는 게 귀찮았다. 엄마는 이런 자두를 씻기기 위해 잔소리를 내쏟지만 자두는 끄떡없다. 이불을 들추고 자두를 쫓는 엄마, 엄마를 피해 내복 바람으로 동네방네를 휘젓는 자두. 이는 ‘자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70~8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1997년 순정만화 잡지 <파티>에서 첫 선을 보인 ‘안녕 자두야’는 지금도 연재 중이다. 자두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하는 이빈(박지은) 작가는 자신의 추억을 더듬어 그림 이야기로 펼친다.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한적한 곳에 아기자기한 정원이 딸린 이 작가 집을 찾았다. 집을 들어서면서 벽에 아들 호빈(7) 군이 그린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부모가 모두 만화가이다 보니 자연스레 아들 역시 장래 만화가 꿈을 꾸고 있단다.

이 작가의 직업은 ‘전업’만화작가다. 90년대 이후로 출판만화시장이 끝없이 무너지면서 많은 작가들이 게임일러스트, 광고 등 다른 길로 돌아섰지만, 그는 전업 작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출판만화계 미래는 지금보다 나빠질 수 없습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이 상황이 지속되느냐가 관건이죠.”

오히려 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을 때가 지금 출판만화계 현실보다 훨씬 나았다. 대여점이 한창 붐인 시절 전국에 2만여 개의 대여점이 입점했다. 이때 출판만화시장은 못해도 2만 권 이상 팔렸다. 하지만 현재는 만화책 한 권을 팔아도 5000부도 팔지 못할 때가 일상다반사다.

“요즘은 아예 5000부 이상 찍지 않아요. 온라인서 만화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만화책을 구입하는 독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만화책을 사는 독자가 곧 마니아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분들은 몇 만씩 되지 않으니까 발행 부수를 줄일 수밖에 없죠. 오히려 만화시장을 사장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대여점’시대에 만화책이 더 잘나갔습니다.”

출판만화계가 어려워지면서 단순히 작품 종류와 찍어내는 부수만 감소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더 큰 문제는 작가들이 점점 만화에서 손을 떼는 것이었다. 이 작가는 동료 작가들이 만화계에서 떠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월 1회 꼭 마음 맞는 동료 전업 작가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꼬박 나간다. 그때마다 어려운 만화계 현실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 등 다양하게 이야기하다보면 힘이 난단다.

▲ 2층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리는 이빈 작가 (사진=박선혜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같이 이 길을 걷는 동료 작가뿐 아니라 팬들의 응원도 있다. 지금은 <안녕 자두야>로 많이 알려져 자두 팬들이 많단다. 아들과 같이 유치원생부터 20~30대 및 주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자두는 저뿐만 아니라 주위 작가와 친구들의 이야기로 구성됐어요. 심지어 자두에 제 아들을 투영시켜 그릴 때도 종종 있죠. 실제로 저희 집을 모델로 자두네 가족을 구성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할 량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파티> 편집장님이 자투리 만화를 달라고 하셔서 편집후기 때 남기는 그림체를 써서 그렸죠.”

당시 <파티> 편집장과 친분이 있던 터라 12페이지 분량의 자투리 만화를 그렸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자두 캐릭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빈이라는 필명으로 옛 친구도 찾았죠. 어렸을 때 같이 만화를 그리던 친구와 함께 둘 중 누구든지 만화가가 되면 ‘이빈’이라는 칭호를 쓰자고 약속했었어요. 그래서 만화가가 된 전 이 이름을 쓰게 됐고, 나중에 친구가 제게 연락을 해왔죠.”

자두는 누가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 찼다. 세대가 달라도 누구든지 유년시절에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재미있게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에겐 추억을 10대와 더 어린 독자에겐 엄마세대 이야기 및 자신이 겪고 있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볼 수 있었을 터이다.

순정만화를 그리는 이빈 작가. <안녕 자두야>가 대표적일 것 같지만 사실 <ONE> <MANA> 등 늘씬하고 퇴마사·가수 등 독특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유명하다. 지금 역시 만화잡지 <파티>에 ‘패리스와 결혼하기’라는 순정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전업 작가로 꾸준히 그 자리에 있고 싶다는 이 작가에게서 만화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자두는 제가 만화가 생활을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 계속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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