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파인텍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씨가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426일째다. 겨울을 두 번 맞이했다. 한겨울에 난방 기구 하나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농성을 했고 7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건강진단차 올라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진에 따르면 두 사람 다 체중이 50킬로로 줄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라 한다. 굴뚝이 원형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몸을 눕힐 수도 없는 상황이다. 75미터 높이여서 사시사철 바람이 쌩쌩 불고 체감 기온은 지상에 비해 훨씬 낮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왜 이곳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나?

스타플렉스가 경영상의 이유로 공장가동을 멈춘 상태의 한국합섬을 인수한 것은 2010년이다. 김세권 대표는 노동자들에게 3승계(고용, 노조, 단체협약)를 합의했다. 스타케미컬이라는 법인을 만들고 2011년 4월부터 공장을 정상가동했지만 1년 반 만에 멈췄다. 2013년 1월 회사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들며 폐업을 해버렸다. 168명의 노동자 가운데 권고사직 요구를 받아들인 139명은 퇴직했고 사직 요구를 거부한 29명은 해고됐다.

2014년 5월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장이 스타케미컬 공장 굴뚝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408일에 이르는 고공농성 끝에 노사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해고자 11명을 고용보장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며 7개월 안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합의불이행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 측은 공장을 폐쇄했다. 두 노동자가 서울 목동에 있는 발전소 굴뚝에 올라간 이유이다.

지난달 27일 이후 여러 차례 노사협상이 진행됐지만 10일 오전까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스타플렉스로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거절했다.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이 어려우면 김세권 대표가 파인텍 법인의 대표라도 맡아 고용보장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파인텍과 스타플렉스는 별도의 법인이라는 이유를 들며 거부했다. 고용 여력이 있지만 5명의 노동자가 스타플렉스로 들어오게 되면 회사가 망한다는 말까지 했다. 반헌법적이고 전근대적인 생각이다.

김 대표는 협상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노동자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덧칠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행동을 했다. 협상에 앞서 “불법을 저지르고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 것이냐” “평생 제조업을 했지만 언론이 제조업 하는 사람을 악덕한 기업인으로 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기업을 하고 제조업을 하는가. 회사가 어렵다” “빨리 굴뚝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잘못은 노동자에게 있고 본인은 피해자’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42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시점에, 그것도 협상 중에 할 말은 아니었다. ‘불법을 저지르고’라는 말을 들으면 회사는 잘못이 없고 노동자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두 번에 걸친 협약을 파기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불법을 저지르고’라는 표현은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다.

파인텍 노동자 탄압 사태를 보면서 꼭 있어야 할 뭔가가 빠져있다는 걸 느낀다.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노동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분명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음에도 노사협약을 지키지 않는 스타플렉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고공농성 세계신기록을 쓰고 있는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씨가 목숨을 건 단식까지 하고 있다. 심리 상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초 비상상황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됐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힘들면 이낙연 총리가 나서라. 노동자들 사정을 직접 듣고 해결책을 내라. 검찰과 노동부가 나서서 노동적폐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용자 측이 노동권을 부정하고 노사협약을 일방적으로 깬 게 원인이 되어 사태가 극한에 이르렀는데 국가가 손 놓고 양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불의에 눈감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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