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이제 에르미타시 박물관 투어도 막바지이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 방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34)’를 보았다. 알렉산드르 1세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컬렉션을 1814년에 구입했다.

그런데 그림은 루벤스와 사뭇 다르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비추고 있고 성모 마리아는 실신 상태로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다. 어떤 종교사학자는 이것이 화려한 루벤스와 수수한 렘브란트의 차이이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본 그림은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1634)’이다. 렘브란트는 1634년에 아버지가 시장을 지낸 암스테르담의 부유층인 사스키아와 결혼했다.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를 제피로스(서풍의 신)의 부인 플로라(꽃의 여신)로 그렸다. 그녀의 머리는 꽃으로 장식돼 있고, 꽃으로 치장한 지팡이를 들고 있어 마치 봄의 여신 같다. 옷의 우아한 자수는 동양풍으로 화려하며 얼굴은 소녀같이 붉다.

1636년에 렘브란트는 ‘돌아온 탕자의 옷을 입고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은 술집에서 창녀들과 놀아나며 유산을 다 탕진한 탕자를 연상케 한다.

안타깝게도 사스키아는 1641년에 아들 티투스를 낳은 후 1642년에 죽었다. 이때부터 렘브란트의 몰락이 시작됐다.

이어서 1636년에 그린 ‘다나에’를 보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에는 아르고스 국왕 아크리시우스의 딸이다. 아크리시우스는 손자에게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다나에를 청동 탑에 가둔다. 그런데 다나에를 보고 사랑에 빠진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찾아오고, 그녀는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예언은 들어맞았다. 페르세우스가 창던지기 대회에서 던진 창이 우연히 아크리시우스의 몸을 꿰뚫는다.

이 그림은 다나에와 제우스가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제우스는 황금빛 햇살로 다나에의 방에 스며든다. 그런데 완전 나체의 다나에는 오른손을 들어 황금 햇살을 맞이하지만 그리 관능적이지는 않다.

주목할 것은 다나에의 머리위에 있는 에로스의 동생 안테로스이다. 양손이 묶인 채 울고 있는 안테로스는 ‘응답 없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그림의 주제를 ‘아브라함을 기다리는 사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다나에’ 그림은 수난을 당했다. 1985년 6월 15일에 한 남자가 그림에 염산을 뿌리고 칼로 두 번 난도질 했다. 다나에의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 박물관 측은 12년간이나 복원작업을 했다. 이후 박물관은 물이나 액체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윽고 1635년에 그린 ‘이사악의 희생’을 보았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99세에 낳은 외아들 이사악의 얼굴을 움켜쥐고 칼로 막 내려치려는 찰나에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잡는다. 칼은 떨어지고 천사의 소리가 들린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도다. 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창세기 22장 9~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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