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대포폰이란 정체불명의 전화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의 진원지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청와대 행정관이 일명 ‘대포폰’을 지급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포폰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대포폰이란 무엇일까? 대포폰이란 사용자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등록한 휴대전화를 뜻한다. 대개는 타인의 허락 없이 명의를 도용해 개설한다. 주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범죄자나 통화내역을 발각당하지 않으려는 사람, 국내에서 신용증명이 어려운 외국인들이 사용한다. 타인 명의를 허락 없이 도용할 경우는 범죄행위에 해당하지만 시중에는 인터넷 등에서 많은 전문거래상들이 탈법 영업을 일삼고 있다.

대포폰 이전에도 ‘대포’란 단어가 들어가는 물건들은 많이 등장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은 신문 광고업계에서 쓰이는 ‘대포광고’일 것이다. 대포광고란 마감시간이 임박해도 광고유치가 어려울 경우 광고주의 동의 없이 무료로 싣는 광고를 말한다. 대개 과거에 게재했던 광고를 그대로 싣는 경우가 많다. 광고가 없어 신문을 백지로 낼 수는 없기에 궁여지책으로 그러는 것이다. 이 용어는 요즘도 쓰이고 있다.

이 밖에도 ‘대포차’ ‘대포통장’이 있다. 대포차란 개인 또는 법인 간 금전관계 등과 같은 여러 사유로 인하여 압류 또는 보관하던 자동차를 자동차관리법에서 정하는 중고자동차의 매매·이전·등록에 관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 거래된 자동차를 말한다.

대개는 자동차등록원부상의 소유주와 현재 점유하여 운행하는 소유주가 다른 자동차를 일컫는다. 대포통장이란 역시 타인 명의를 도용한 통장으로 금융실명제 실시 후에는 불법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대포차는 불법택시에 주로 사용되고 범죄자들도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대포통장 역시 금융거래 사실을 은닉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범죄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정황으로 보건대 대포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거의가 범죄와 관련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대포’란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하나는 우리말 대포(大砲)란 단어에 ‘허풍’이나 ‘거짓말’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들어 정품이 아닌 사이비, 거짓말 제품을 일컫게 됐다는 설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약간 견강부회 같은 감이 든다.

두 번째는 일본어 무뎃뽀(無鉄砲·むてっぽう)에서 왔다는 주장이다. 무뎃뽀는 원래 일본어 むてほう(無手法)에서 비롯돼 むてっぽう(無鐵砲)로 변환된 말로서 무모하다란 의미로 쓰인다. 철포(鐵砲)는 일본말로 소총이라는 뜻인데 무철포란 말 그대로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총도 안 가지고 간다”와 비슷한 뜻이다. 바로 이 무뎃뽀에서 무가 달아나고 뎃뽀만 남았는데 이 말이 표기하는 과정에서 대포로 변용되었다는 것이다. 무뎃뽀는 과거 히트영화 <넘버 쓰리>에서 송강호가 날린 명대사 “무대뽀 정신”을 통해서도 유행한 적이 있다.

어쨌거나 바로 이 대포폰이 이번에도 대형 사고를 쳤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주장과 검찰의 해명 등을 종합하면 지난 7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 장진수 주무관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훼손시키는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만들어 준 대포폰을 사용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가 개입한 결정적 정황이라 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대로 덮었다. 검찰이 사실상 수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직폭력배나 사채업자, 그리고 통화내역을 은폐하고 싶은 불순한 인사들이나 이용하는 대포폰을 대명천지에 청와대가 만들어 범죄은닉에 사용토록 제공했다는 대목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어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뭔가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기획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일들이 이번 사건 초기부터 유기적으로 발생했다.

조직폭력배들의 은밀한 담합행위를 보는 듯하다. 공정사회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와 공직자들의 윤리실태를 점검하겠다는 총리실의 음습한 행태는 분노를 넘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국정조사와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진실을 낱낱이 가려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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