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우수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한지가 대한민국 미래”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차우수 회장의 한지산업을 향한 열정은 세월도 어쩌지 못했나 보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의 수장인 차 회장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에게 받은 한지 명함만 봐도 차우수 회장이 얼마나 한지를 사랑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한지의 어떤 매력에 빠졌기에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지산업에 바치고 있는 걸까? 그가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를 출범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의 입을 통해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한(恨)이 맺어준 한지(韓紙)산업진흥회와의 인연

2004년 해외로 이민하게 된 지인이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아가고 싶어 해 같이 고민하다가 ‘한지’를 가져가자는 답을 내리고 그 뿌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충청북도 도청을 통해 괴산에서 손수 한지를 만드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차 회장은 한달음에 그곳으로 내려갔다.

“전통방식 그대로 한지를 만들고 있던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전율이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한지는 너무 훌륭한데 그 자랑스러운 한지를 만들고 있는 공장은 쓰러져가고 있었고 장인들의 초라한 모습은 마음을 더 아프게 했죠.” 그때부터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한지 소비를 늘려 이 훌륭한 문화를 지킬 수 있을까’였다고 한다.

백방으로 알아보던 그는 한지가 기록용지로서 가치가 있고 널리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고, 대전에 있는 국가기록원에 찾아가 그동안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전하며 한지가 어떻게 쓰이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관계자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의 한지를 쓰기는커녕 수입한 중성지를 쓰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에서 기록용지로 한지를 쓴 전례도 없고, 표준도 없어 쓰지 못한다는 게 그들의 이유였죠.”

이미 조선왕조실록이나 동의보감 등 한지로 기록된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입증해주고 있는데 전례가 없어서, 표준이 없어서 쓰지 못한다는 말에 기가 찬 그는 표준을 만들어준다는 기술표준원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어요.” 이런 정부의 안일한 처사가 차우수 회장이 한지산업에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됐고, 그 후 기술표준원의 약간의 행정적인 지원만으로 사단법인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다.

◆ 첨단산업의 보고(寶庫) ‘한지산업’

쉽지 않은 시작이었고 현재도 자신의 월급을 전부 투자할 만큼 힘든 길이지만 그가 한지산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이 아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우리 전통문화는 첨단산업의 보물창고예요. 한지 하나만 보더라도 세계가 인증한 이 종이를 전 세계 중요 문서의 기록지로만 사용해도 엄청난 경제효과를 내게 되는 거죠.”
차 회장의 한지에 대한 자신감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이미 역사가 입증해 준 것들이었다.

한지산업 분야가 어려움에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한지가 없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그가 반문했다. “일제강점기 때도 일본이 우리나라 유물ㆍ사람ㆍ산업 등 다 가져갔지만 단 한 개만은 못 가져갔어요. 그게 바로 우리나라 땅입니다.” 우리나라 토양에서 나오는 영양분을 먹고 자란 닥나무로 만들어야지만 최고의 한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도 마을마다 한지를 만드는 곳은 꼭 만들어 뒀을 정도라고 한지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만큼 이 토양은 ‘신이 내린 토양’이라며 “지금은 ‘땅’하면 투기의 대상으로 변했지만 이런 가치관을 다시 우리 문화와 우리의 얼로 재조명하면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눈에서는 희망이 가득했다.

▲ 한지로 만든 손수건 (사진제공: 성실섬유 제공)

◆ 공예를 넘어 ‘산업’의 날개를 달고

이런 희망을 품고 시작한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KPA)는 현재 어떤 위치에 서있을까?
“KPA가 발족한 후 2005년에 세계 최초로 코엑스에서 4만여 명이 방문한 국제한지산업박람회를 치르게 됐고 그제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브랜드 박람회를 열게 됐죠.” 이처럼 KPA가 주관한 한지산업박람회로 말미암아 한지에 대한 개념이 ‘공예’수준을 넘어 ‘산업’으로 바뀌게 되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됐다.

게다가 KPA는 회원이 컬쳐니어(문화기술자)가 돼 13개 나라에서 한지산업을 알리며 한국의 문화산업을 전파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는 소상공인진흥원과 같이 한지공예창업 과정을 교육하기도 했다.

KPA의 출범으로 정부와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한 차 회장과 KPA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가장 우선된 목표는 아직도 표준화하지 못하고 있는 한지의 표준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그는 오히려 아직도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자신의 죄인 것 마냥 미안해했다.

이어 차 회장은 “조선왕조실록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마칠 것이 아니라 조선이 끝나면서부터 시작된 대통령들에 대한 역사를 한지에 기록해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지보다 보존성이 떨어지는 일반 양지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문서가 훼손되면 그 후에는 역사적 혼란만이 남을 것이라며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정으로 이 길을 걸어온 차우수 회장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욕심’이었다.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지나온 흔적을 누군가는 꼭 이어줘야 하고 산업과 반드시 연결해줘야 해요. 그 작업을 동시대 살아가는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 입니다”라며 말을 마치는 차 회장의 웃음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 전통 방식에 의해 제작되는 한지진동막, 선별과 페어 매칠, 제조된 스피커 유닛별 특성에 맞게 개별 제작되는 승압트랜스포머 등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진행된 한지 스피커. 아큐브(ACCUVE) 시리즈 7. (사진제공: 자연이 그려내는 소리)


※ 프로필 (현재)
사)한지문화산업 연합회 수석 부회장
한 브랜드 전략연구소 소장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사)생태환경건축학회 산학부 운영위원장
한류문화산업포럼 산업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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