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 문화칼럼니스트 

 

올해는 돼지 중에서도 황금돼지해라 기대가 크다.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니지만, 다들 사는 게 힘이 들어 그런지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은근히 희망을 품어본다. 황금돼지 덕에 대박이 나지는 않더라도, 서민음식이라는 돼지고기라도 마음 편히 잘 먹고 살 수만 있어도 좋겠다 싶은, 그런 시절이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돼지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고려 말, 명을 치기 위해 요동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지금의 개성인 개경으로 회군해 권력을 잡았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성계는 우왕을 강화도로 귀양 보내고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최영 장군도 참살했다. 왕족이었던 왕씨들도 보이는 대로 잡아 죽였다. 우왕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창왕을 왕위에 올렸는데, 이 창왕이 사실은 우왕의 아들이 아니라 승려 신돈의 아들이라 모함해 폐위했다. 이 때 폐가입진(廢假立眞), 즉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결국 우왕과 창왕, 그 뒤를 이은 공양왕이 모두 이성계 일파의 손에 죽었다.   

백성들은 이런 이성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반감이 심했던 개성 사람들은 덕물산 중턱에 당집을 만들고 최영 장군의 화상을 모셔 신으로 받들었다. 해마다 최영 장군의 영혼을 달래는 당제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삶은 통돼지가 제물로 바쳐졌다. 어느 당제나 할 것 없이 삶은 통돼지가 제물로 쓰였지만, 제가 끝난 뒤 음복을 할 때 다른 당제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달려들어 돼지머리를 후려치거나 몸통 여기저기를 마구 쑤시고 짓이겼다. 살점을 뭉텅뭉텅 썰기도 하고 더러는 난도질해 잘게 썰기도 하여 나눠 먹었다. 그런데 고기를 씹는 표정들은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인상을 콱 쓰며 와드득 와드득 요란하게 씹어 먹었다. 이 돼지고기를 ‘성계육(成桂肉)’ 즉 이성계의 고기라 하고, 국을 끓여서는 ‘성계탕(成桂湯)’이라 불렀다. 

그렇게 수육과 탕 속의 돼지고기를 씹으며 이성계에 대한 분을 삭인 것이다. 왜 하필 돼지고기였는가 하면, 이성계가 기해생(己亥生), 돼지띠였기 때문이다. 개성 덕물산의 이런 풍속이 전국으로 펴져 곳곳에서 성계육, 성계탕으로 이성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반죽을 마구 주물러 닭 모가지 비틀듯 떼어내 떡국을 끓였는데, 그게 조랑떡국이다. 이성계의 목이라 여기며 조랑떡을 빚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정도전’이라는 TV 드라마에서 이성계가 민심을 살피기 위해 변장하고 시장으로 나갔다가 성계탕의 존재를 알고 그걸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왔다. 이성계 역할을 맡은 배우 유동근 씨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그 장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권력을 위해 무수히 사람을 죽인 이성계가 실제로 그렇게 절절하게 눈물을 흘렸을 것 같지는 않지만, 출중한 연기력 탓에 진짜 그런가 보다 했다. 성계육과 성계탕으로 대변되는 개성의 민심 탓에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에 먹을 것이 넘쳐나고, TV 속에서도 쉼 없이 먹고 또 먹는다. 골목마다 동네마다 식당들이 즐비하고 음식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질주를 한다. 하지만 모두가 TV 속 맛집처럼 즐겁고 신이 나지는 않는다. 힘들다고 난리다. 이제는 성계육도 없고 성계탕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민심은 천심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백성들 원망이 없도록 높은 자리 있는 사람들이 잘 좀 해줬으면 좋겠다.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일이다. 밥이 곧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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