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양극성장애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한 30대 초반 환자가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박씨는 당일 외래 접수를 신청하고 피해자 교수에게 정신건강 상담을 진행했다. 이후 상담을 시작하려는 도중 박씨는 갑자기 진료실 문을 잠그는 등 이상 행동을 했고 도주한 교수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인간은 본래 소박하고 자유로운 세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심지(心知)에 집착할 때 인간은 세계를 둘로 나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신이 현재 사회 속에서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을 넘어서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면, 사회를 증오하고 루저가 된 채 타인들을 위협하고 고립된다.

취업하지 못하고 생계에 힘들어하는 소수의 2030 세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걸까. 뚜렷한 목표와 희망,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용 없는 성장 시대 취업난의 대표적인 피해자들인 이들은 자칫 타인들을 위협하고 사회를 불신하는 범죄자로 전략할 수 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이들에게 타인들을 배려하고 사회 시스템에 동참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생을 포기하고 남을 외면하는 배타적 프레임 안에 갇혀있는 피의자들은 한탕주의에 빠져 비트코인 등에 몰입하고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으며 평소에는 정신병질이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며 범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용인시 처인구 한 아파트에서 모친 이모씨와 중학교 2학년인 이부(異父) 남동생 전모군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이튿날 바로 뉴질랜드로 도망쳤던 피의자 김씨. 김씨 역시 특정 직업이 없던 미래가 보이지 않던 30대였다. 배우 송선미 남편인 영화미술감독 고씨를 서울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한 조씨 역시 큰돈을 주겠다는 청탁을 받고 범행을 저지른 20대였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이코패스 이영학은 자신의 딸의 친구를 살해했다. 이영학은 딸의 친구인 A양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추행하고 목졸라 숨지게 한 뒤 시신을 강원도 영월의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같이 변해가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가 냉혹하기만 하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소방차 구급대원이 전기충격기·가스총 등 호신장비를 소지해 취객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병원 의사들, 특정분야 종사자나 일반인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폭행이나 위협 상황 시 호신장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이 추가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사회 양극화 현상, 청년 취업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뒤따르면서 분노와 슬픔을 동반한 채 절제하지 못한 우발적 범죄가 올해 역시 증가할지 모른다. 최근 4년제 대학의 취업률은 5년 연속 떨어지고 있으며, 2013년 66.0%를 기록한 후 5년째 계속 하락하고 있다. 취업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회복되지 않는 고용절벽과 취업난으로 청년층의 대출이 늘어나고 직장에 취업해도 어려운 현실에서 학자금 대출의 원금 상환이나 이자를 갚아야 하는 현실에 낙담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는 청년층의 우울증을 조기 발견해 치료할 수 있도록 40~70세만 받던 정신건강검사를 20~30세에도 받을 수 있도록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대한민국을 안전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민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자영업자 문제와 더불어 청년층 취업난을 해결하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줘야 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