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람의 나이 30을 ‘입지(立志)’라고 정의한 것은 공자님이다. 20을 약관(弱冠), 40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60세를 가리켜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그러면 ‘입지’란 무슨 뜻일까. 좌전 양공편(左传·襄公27년)에는 입지를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 ‘뜻을 가지고 말하며, 말은 신의가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입지를 삼으며 이 세 가지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志以发言,言以出信,信以立志,参以定之).’

예나 지금이나 30대 나이는 인생의 최고 황금기다. 과거 유교 사회에서는 이들이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면 선비는 인생의 목표를 확고히 세우고, 사대부는 벼슬이 높아져 나라의 운명에 깊이 간여했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가 정치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나이도 30대였다. 조광조와 뜻을 같이한 김정(金淨)도 같았다. 김정은 순창군수로 있을 당시 임금이 왕후 신씨를 폐출하자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상소, 역린을 건드린다.   
김정은 신씨 폐위의 주모자인 박원종(朴元宗) 등을 추죄(追罪)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박원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당대의 최고 권신이다. 그를 삭탈관직하고 감옥에 보내자고 했으니 조정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조광조는 대사헌에 오르면서 임금에게 1백회나 정치, 사회개혁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훈구파들의 모함으로 비극을 당한다. 이들의 개혁이 받아들여졌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말 애국지사 이상설(溥齋 李相卨)은 나이 35세 되던 해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그는 고종의 인준을 거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이완용 등 5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만주로 넘어가 대한광복군정부를 만들어 정도령(正都領)이 됐다.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은 30세에 독립군 총사령관이 됐다. 그리고 31세에 청산리 전투에서 3000여명의 일본군을 살상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33세 기재부 전 사무관 신재민씨의 폭로가 최근 정치권에 태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기재부는 신씨를 공무상비밀누설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신씨의 용기 있는 폭로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이 많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안타깝게 생각해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사건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사회의 수직적 명령 구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명하복(上命下服) 공직사회의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다. 정의로운 젊은 엘리트들은 부당한 지시나 정의에 위배되는 일은 수용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감옥에 가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반기를 드는 것이다. 

30대 신재민 전 사무관의 ‘입지’적 용기는 정부나 여야 정치권, 우리 사회의 낡은 관념과 옳지 않은 시폐에 대한 경각이다. 공직사회는 오로지 국민을 보고 정의롭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그것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한국사회의 보다 성숙함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의를 무시하고 호통을 치며, 폄하하는 시각을 가지면 시대에 뒤떨어질 뿐 아니라 국민들의 박수를 받지 못한다.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하며 진실을 외치고 있는 신 전 사무관의 호소를 이해하고, 바른 소리를 수용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천명’이나 ‘이순’의 아량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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