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窓]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동북아 窓]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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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에는 각각 5만여명 등, 총 10만여명의 전쟁고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중이던 1951년, 북한은 1500여명의 고아들을 폴란드로 보냈다. 그들을 사랑으로 돌본 폴란드 교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다큐영화(추상미 감독·주연 ‘폴란드로 간 아이들’)가 지난 10월 말 한국에서 개봉됐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사실은 2013년 한국을 방문한 당시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한국외대 강연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1955년부터 2년 동안 북한 전쟁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고 말해 처음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일반 국민들은 모르고 지나갔다. 그냥 단순한 북한 고아들의 비극적 사건으로 넘겨버렸는지 모르겠다. 

폴란드 브로츠와프대학 한국학과 이해성 교수는 당시 동유럽으로 간 북한 고아들은 폴란드 6천여명, 루마니아 3천여명, 헝가리 950여명, 동독 600여명, 체코슬로바키아 400여명 등 총 1만여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큐영화에선 폴란드 프와코비체 양육원으로 들어온 150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폴란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님’ 대신 ‘엄마, 아빠’라 부르게 하여 친가족처럼 지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 교사 중 일부는 유태인과 함께 수많은 폴란드인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상처를 간직한 전쟁고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폴란드로 온 아이들은 상당수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아이들 폐에서 발견된 기생충 조사 결과, 절반은 남한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종류였다. 북괴군이 퇴각하면서 남한 전쟁고아들을 북으로 데려간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김일성은 6.25전쟁 당시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 전쟁 중 발생한 전쟁고아를 공산주의 여러 국가에 보내어 관리하도록 했는데, 이 때 남한 측 전쟁고아도 상당수 저들 나라에 보내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우리 정부에서는 한 번도 납치된 우리 측 고아들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 정부에서는 전쟁고아 문제에 대해 북한과 논쟁을 벌이지 않기 위해 묵인해 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폴란드 양육원은 아이들에게 1인 1침대, 하루 세끼 식사, 폴란드어 학습, 주기적 여행도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폭격의 기억 때문인지 밤이면 애들이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갔다”는 요제프 보로비에츠(93)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의 회고는 가슴을 찡하게 한다. 4~10살 정도의 이 아이들은 낮에는 폴란드식 정규 수업을 받았고, 저녁엔 북한 인솔 교사 10여명으로부터 한국어와 역사, 공산주의 사상교육도 받았다. “최대한 많이 배워 전문가가 돼야 한다, 조국에 돌아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가 계속 아이들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1959년 전 인민을 노동에 동원하기 위한 북한의 ‘천리마 운동’의 여파로 다시 북한으로 강제송환 된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기네 상처도 치유하려했던 폴란드인들은 뜨거운 눈물로 그들을 전송해야 했다. 1989년에 한국과 수교한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분단과 피지배, 반공, 독립운동의 과정도 유사하게 겪었다. 이제 폴란드는 한국의 전체 해외투자규모 5위, 유럽연합 내 수출 3위(독일, 네덜란드 다음)에 해당하며, 현재 12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국 전쟁고아들을 한 가족처럼 대해 준 폴란드인들과 다각적인 협조와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들으며 60년 전에 폴란드에서 교육받고 있었던 전쟁고아들과 그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준 교사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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