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종교 (10)
[사진으로 보는 역사] 종교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양 전도사(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4
평양 전도사(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4

평양 전도사(1900)

흰 한복에 갓을 쓰고 전도하러 다니는 모습니다. 당시에는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권서인(colporteur)이라고도 불렀는데, 영어의 뜻은 ‘서적 행상인’이다. 한자로는 권할 권(勸)자를 써서 성경책을 권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 즉 전도인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우리나라에서 권서가 시작된 것은 1882년 만주에서 복음서들이 한글로 번역돼 반입될 무렵으로 초기에는 무거운 ‘복음 궤짝’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다녔다. 권서인들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사진 속 인물은 전도 활동과 함께 의료 활동도 겸했다. 가방 안에는 성경책이 들어 있고, 손에는 침구(鍼灸)를 든 모습이다. 갓 위쪽에 십자가 무늬가 달려 있다.
 

조랑말 탄 제주도 수녀와 타케 신부(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4
조랑말 탄 제주도 수녀와 타케 신부(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1.4

조랑말 탄 제주도 수녀와 타케 신부(1900)

프랑스 외방선교회 소속 성직자이자 식물학자인 타케 에밀(Emile Joseph Taquet, 1873∼1952, 한국이름 엄택기(嚴宅基), 애칭 엄닥개)신부(맨 오른쪽)가 조랑말을 탄 수녀를 지도하는 모습이다. 타케 신부는 제주도에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1911년 일본 아오모리에 주재하던 프랑스 출신 성직자 포리 신부로부터 받은 온주밀감나무 14그루를 홍로성당에 심고 농가에도 분양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