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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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단연합기구로 활동해왔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한기총이 걸어온 길은 한국교회 주류 교단들의 발자취와 맥을 함께한다. 보수진영이 주를 이룬 한국교회에서 한기총이 남긴 역사적인 족적을 살펴보며, 무소불위 권력집단에서 몰락을 앞둔 현재까지 원인과 실태를 진단한다.

작년 소멸 위기까지 몰린 한기총
기하성 이영훈 목사 징계 거두고
기침 복귀로 간신히 교세 이어가
 

내부 분란에 중심 잃고 흔들려
회원교단 간 갈등에 답보 상태
‘기하성’ ‘기침’ 주도권에 불만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입지가 상당히 위태롭다. 이미 군소교단 연합체로 전락한 한기총이 최근에는 더 분열이 가속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가 복귀했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이 실권을 쥐는 분위기다.

교세로는 간신히 소멸을 모면한 셈이다.

이렇다할 교세를 보이지 못하는 다른 한기총 회원 교단에 비해 두 교단은 교인수가 꽤 있다. 자체 집계로 그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각각 79만명, 180만명 등 도합 259만명이 된다. 현재 사무총장 윤덕남 목사가 기침 출신이며,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는 기하성 소속이다.

사실 2012년 분열 이후 한기총의 교세를 살펴보면 사실상 소멸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한기총은 1989년 대형교단을 중심으로 창립한 이후 20년 남짓 보수 정치권과 합세해 한국교회 대표를 자처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회원교단이 고작 10개에 불과했던 NCCK와는 달리 한기총은 2012년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전 한교연)이 분리되기 이전까지 한국교회 양대 대형교단인 예장합동·통합을 포함해 67개 회원교단을 거느리는 등 매머드급 교세를 형성했다. 한기총이 교계 내외에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한교연이 분리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기총 주요 교단의 교인은 1000만명(교단 자체 보고 기준)에 육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교연 분리 이후에는 500만명대를 유지했다. 당시 한교연에 속한 교회수는 한기총보다 1.3배, 분담금은 1.2배 정도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2014년에는 예장고신이 탈퇴를 했고, 교인 300만명이 속한 예장합동이 탈퇴를 했다가 한기총에 복귀하지 않고 행정보류 상태가 돼 결국 약 189만명만 남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말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한국교회총연합의 공동 대표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회원 제명의 건이 공식 회의록에 등장했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한기총은 이 목사에 대한 치리를 없던 일로 처리했다는 전언이다.

기하성은 지난해 말 여의도순복음총회와 서대문총회가 통합하면서 자체 집계 교세가 180만으로 늘었다. 한기총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지는 기침은 13년 전인 2006년 자체 통계로 볼 때 교세가 79만명이다. 최근 교단마다 교인수가 줄어드는 추세로 볼 때 현재는 이 수치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부 합쳐도 현재 한기총의 교세는 268만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각 교단이 발표한 교인수와 통계청이 발표한 개신교인 숫자는 큰 차이가 나 실제 교세는 이에 못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기총은 소속 교인이 1200만이라고 집회 때마다 표현하고 있지만,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개신교인 수는 860만명으로 차이가 무려 340만명이나 됐다. 또 개신교 교단이 170개가 넘고, 이 중 63개 교단이 가입했었던 점을 감안하면 2005년 당시 한기총에 속한 교인은 약 50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교인수가 2배 정도 부풀려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현재 한기총은 회원교단으로 77개 교단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 중 8개 교단은 행정보류나 회원권이 제한된 교단이다. 이 교단들을 제외한 61개 교단 중 대다수는 군소교단이다.

◆ 내부 갈등 심해… 이단 전력의 교단들

게다가 현재 한기총은 교세 뿐 아니라 회원 교단 간 갈등도 상당하다. 한기총에 소속된 교단이라 할지라도 특성상 하나 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기하성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주축인 교단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창립했고, 조 목사 일가는 온갖 재정비리로 수많은 소송 끝에 유죄를 선고 받고 법정형을 구형받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재는 교계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198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또 한국교회사를 어지럽힌 ‘이단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이기도 하다. 창립과 함께 엄청난 부흥을 이뤘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당시 개신교 주류 교단으로부터 ‘사이비’로 규정을 받았다.

교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인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제68회 총회에서 ‘조용기, 권신찬 이단 사이비 연구대책위원회’의 보고서를 채택하고, 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했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소장 최삼경 목사)가 1993년 4월 27일 발간한 ‘상담소자료집 3-사이비이단에 대한 대책과지침I’에 자세히 명시돼 있다.

조 목사에 대한 이단‧사이비 논란은 예장 통합 제77회기인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 사이인 1988년 국민일보가 창간됐고, 이듬해 조 목사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한기총이 탄생했다. 조 목사가 한기총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 중심축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 대표회장인 엄기호 목사 진영과 세 번 대표회장에 출마했다가 번번이 좌절된 김노아 목사 진영, 한기총 내부 고발 진영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

특히 김노아 목사도 과거 이단시비 전력이 있다. 김노아 목사는 지난 24‧22대 대표회장 선거와 이후 이영훈 대표회장의 직무정지로 인한 보궐 선거 때에도 후보로 나섰던 인물이다. 법적 소송으로 이영훈 대표회장 직무를 정지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이단성 논란으로 번번이 대표회장 선거에서 낙마해 쓴 맛을 봐야 했다. 그의 과거 배경 때문이다. 김노아 목사의 개명 전 이름은 김풍일이다. 그가 김풍일로 활동할 당시인 지난 2009년 예장통합은 교리 등을 문제 삼아 김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4년 후인 2013년 김 목사는 이름과 소속 교단, 교회 명칭까지 모두 바꾸고 한기총에 가입했다. 당시 한기총은 김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했던 예장통합이 탈퇴한 상태였다. 김노아 목사는 예장성경총회 새빛등대중앙교회 김풍일 목사에서 예장성서총회 세광중앙교회 담임목사로 탈 변신했다. 이름과 교단 등은 바꿨지만 그의 교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교계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대표회장 선거에 대한 김 목사의 출마의사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이달 선출되는 차기 대표회장을 놓고 현 대표회장인 엄 목사와 견제 세력의 기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기하성 측에서 후보를 내놓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교세가 아니라도 금권선거와 이단논란, 목회자 비리 등 각종 오명으로 얼룩진 한기총이 한국교회를 대표해 각 교단을 아우를 수 있을지를 놓고는 냉소적인 시각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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