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해 1월 26일 밀양시 중앙로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6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다쳤다. 간호조무자 1명, 간호사 1명, 의사 1명도 사망했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대형 참사로 발전됐다. 중소병원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가 안된 탓에 생긴 참사다.

밀양 화재 사고가 크게 문제가 되자 정부는 30병상 이상의 중소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령을 만들기로 하고 스프링클러 설치비용 중 일정액을 국가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국고 30%, 지자체 30%, 병원 40%의 비율로 분담하는 방안을 내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중소병원 1066곳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모두 1148억원으로 1곳당 1억 700만원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기획재정부는 복지부가 제출한 예산안 전액을 삭감했다. 이후 복지부가 10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서라도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꾸조차 없었다. 기재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건 옳지 않으니까 융자를 해주라고 했다. 융자를 하라는 것은 ‘중소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방침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병원이 융자까지 해가면서 자진해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리 없다. 의료의 공공성을 망각한 처사다. 기재부의 안전불감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기재부만의 문제로 본다면 잘못이다. 기재부는 대한민국 안에 있는 정부 부서일 뿐이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정부 부서는 대통령 뜻을 거스를 수 없다. 기재부의 행동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밀양참사 때 문 대통령, 이낙연 총리,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밀양참사 직후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화재재발방지 대책을 낸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스프링클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것은 정부가 약속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사고도 나지 않기를 바란다. 유사한 참사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국민이 그럴 것이다. 정부가 스프링클러 예산을 삭감시킨 상황에서 또 다른 중소병원에서 대형 참사가 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앞으로 중소병원은 물론이고 다중이용시설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으면 제2의 밀양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거나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늘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고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국민이 한 명도 없게 하겠다’고 했다. 불이 날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놓게 만드는 기재부의 행태는 대통령의 뜻에 역행하는 것 아니고 무엇인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 사람의 생명권이 박탈되는 현실이 무섭기만 하다. 돈 1148억을 아끼려다 사람이 죽게 된다면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국가가 존재하는 의미는 사회 구성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안전사고나 참사는 국가의 책임이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은 용납될 수 없다.

기재부가 전액 삭감한 스프링클러 지원 예산은 힘센 의원 지역구로 갔을 수도 있고 어디에선가 낭비되는 세금에 포함될 수도 있다. 물론 꼭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삭감한 돈이 어디에 쓰이든 상관없이 그 삭감으로 인해 대부분의 중소병원은 위험에 상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재가 났다 하면 대형 화재로 변하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스러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 여전히 불안에 떠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추진하지 않은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사람이 먼저’는 ‘여전히 사람은 뒷전’으로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중소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모두 안전 약자다. 병 치료하러 갔다가 목숨을 빼앗기는 현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무한 책임감을 느끼고 중소병원 스프링클러 예산부터 즉시 배정하는 결단을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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