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포격도발로 전쟁의 무서움을 느끼게 했던 ‘접경지역’ 연평도에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적대행위 전면중지로 평화가 깃든 가운데 신년을 맞는 연평도 주민들을 만났다. 이들은 포격 당시 아픔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도 포격 당시 피폭으로 전소된 주택.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해당 주택을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도 포격 당시 피폭으로 전소된 주택.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해당 주택을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피폭 당시 건물 보존해 교육

“폭발 후 연기 난 장면 생생”

마을 전역에 대피소 마련돼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연평도 주민들이 새해에 평화를 바라는 이유랄까. 연평도 곳곳에서는 전쟁의 깊은 상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 당시 피폭으로 전소된 주택 3채를 보존하고 있는 연평도 안보교육장은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연평안보수련원의 직원이자 연평도 해설사 1호인 김명선 주사의 안내에 따라 살펴본 주택의 모습은 피폭 당시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렸고 지붕 대부분이 타서 없어진 상태였다. 벽돌을 쌓아 만들었던 건물벽도 무너져있었고 남아있는 벽도 곳곳에서 균열이 보였다.

김 주사의 설명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도발로 피해를 입은 곳은 수협, 면사무소 창고, 보건소, 종합운동장을 비롯해 민간주거지 5개 권역, 52채가 있다. 대부분 복구 작업을 통해 다시 만들어졌고, 안보교육장으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민간주거지 중 1개 권역이다. 이 권역에는 포탄 하나가 1개 가옥에 떨어졌으나 불이 옮겨 붙으면서 총 3개 가옥이 타버렸다.

서 팀장과 마찬가지로 연평도에 거주한지 20년이 넘은 김 주사는 포격 당시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포격에서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며 “해상사격 훈련이 있어서 처음엔 오발탄인 줄 오해했다. 하지만 곧 방송이 나왔고 북한의 소행임을 알게 돼 대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1차 포격 이후 잠시 주춤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에 많은 사람이 대피했고 당시 5살이었던 아이와 함께 배를 탔다”며 “하지만 남편은 남아서 사람들의 대피를 도왔다. 배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연평도를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도 포격 당시 포탄이 떨어졌던 연평면사무소 창고시설 천장부 원형.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이를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도 포격 당시 포탄이 떨어졌던 연평면사무소 창고시설 천장부 원형.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이를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포격도발로 인한 피난생활은 더 참담했다. 그는 “찜질방에서 피난생활을 할 때 너무너무 비참했고 참담했다”며 “심신이 지친 사람들 1000여명이 빽빽하게 한 공간에서 생활을 했다. 그때 면역력이 떨어져 호흡기 질환이 와서 입을 열면 고름이 꽉 찼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주사는 “연평도 포격도발 8주기 때 기분이 묘했다”며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 하루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곳에 자주 노출되면 해소된다고 해서 이곳을 많이 찾았고 그래서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100% 해소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다른 주민들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심리를 반영한 듯 마을 곳곳에는 언제든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대피소가 마련돼 있었다. 김 주사의 안내에 따라 살펴본 안보교육장 지하 대피소는 두꺼운 벽으로 돼 있었다. 내부에는 방독면 등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물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김 주사는 “신축한 유초중고 통합학교 밑에도 건물 크기의 대피소가 있다. 또 선착장 매표소 밑에도, 연평종합회관 지하에도, 노인정 지하에도 (대피소가) 있다”며 “지금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 대피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 ⓒ천지일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연평안보수련원에서 관할하는 연평도 안보교육장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 ⓒ천지일보

한편 연평도 포격 사건은 지난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 2명 등이 사망한 참사로,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래 북한이 남한 민간을 상대로 한 첫 군사 공격이었다.

국군은 1차 포격 이후 13분만에 대응사격을 가했고, 서해 5도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뒤, 곧 전군으로 진돗개 하나를 확대 발령했다. 북한은 1~3차 포격을 포함해 총 170여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중경상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 3명의 인명 피해와 각종 시설 및 가옥 파괴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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