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초등학교 졸업반인 1971년 초였다. 학교에서 100m 달리기가 가장 빠르고 공부도 최상위권인 반 친구가 신설된 서울체육중학교에 합격했다. 국민들 대부분의 생활이 어려웠던 당시 서울체육중은 전액 장학금을 줘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잘해야 입학할 수 있었다.

일반중학교에 진학한 필자를 비롯한 친구들은 부러움으로 그의 합격을 축하해주었다. 운동을 좋아하던 또래들이 가장 원하는 곳으로 진학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알게됐지만 당시 친구와 같이 입학했던 동기생들로는 축구 해설가인 이용수(세종대 교수), 신문선(명지대 교수) 등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72년 뮌헨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우승한 미국의 프랭크 쇼터가 현직 변호사라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을 땐 “운동을 잘하려면 공부도 잘해야 되겠구나”라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다.

변호사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에서 세계 최고가 됐다는 사실은 어린 중학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올림픽 이후 프랭크 쇼터의 마라톤붐으로 친구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장거리 달리기를 자주 하기도 했다.

고교 1학년 때 효창운동장에서 아마추어팀들이 겨루는 서울교육감배 고교 축구대회에서 전국 최고 수재가 모인다는 경기고가 3연패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와 운동이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당시 고교 입시제의 경기고는 720명의 한 학년에서 500~600명 이상이 서울대 등 초일류대학에 진학했던 최고의 명문교였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는 것은 요즘 정부가 학교체육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는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손을 대지 못했던 ‘운동 따로, 공부 따로’의 학교 엘리트 체육의 구조적인 문제에 본격적인 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40여 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학원 스포츠 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 순수한 아마추어를 넘어서 전문화, 개인화가 이루어지며 수준이 현격히 높아진 현재의 국내 스포츠 환경에서는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중고등학생 운동선수들은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대학 운동선수들은 말 그대로 ‘큰 학문’은 아예 담쌓고 프로를 방불케 하는 ‘큰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 운동선수의 경우 정상적인 강의에 거의 참가하지 않으며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에도 응하지 않는 이도 많다. 시험에 참석해도 대체적으로 “교수님 죄송합니다. 대회 참가와 훈련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며 몇 글자를 답안지에 써놓고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게 보통이다.

운동선수들의 이 같은 학업능력 저하는 운동선수들을 ‘절름발이’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난 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함은 물론 개인의 인생에도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파행적인 학교 체육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기술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주무부처와 경기 단체 등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학축구와 대학농구가 학생들의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주말 경기, 대학 간 홈 앤드 어웨이로 이미 경기방식을 바꾸었으며 대학 배구도 내년부터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갖기로 했다. 고교야구도 내년부터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경기를 집중적으로 열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경기 운영방식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이들 종목에 각기 수억 원의 예산을 지원, 학교체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학교체육의 정상화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경기방식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선수, 감독, 학교 등이 이러한 변화의 환경에 자발적이면서 주도적으로 적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운동선수는 운동과 학업을 열심히 해 스스로 보람을 찾도록 해야 한다. 또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최대한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수들의 모든 것을 감독하기보다는 전문기술을 연마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하며, 학교는 학교의 명예와 성적을 올리는 데 연연하지 말고 학생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받아들이는 이들이 제대로 실행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원 스포츠 정상화의 당사자들은 이를 잘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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