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작가

이병철은 할 일 없이 뒹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잡지를 읽을 때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읽을 정도였다. 이런 그의 특이한 삶의 방식처럼 독서법도 남달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는데, 그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소설로 시작해서 역사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아나갔다. 다독이 아니라 난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그의 독서법은 그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그의 독서는 집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강준만의 <이건희 시대>에 따르면 그는 신문의 신간광고는 반드시 보고, 필요한 책이 있으면 바로 구매를 했다. 또한 집무실에도 제법 넓은 서가를 설치해 놓았다. 쓸데없는 전집을 두는 일은 없었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을 비치하고 온 힘을 다해 탐독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은 바로 <논어>다. 그가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 <논어>를 비롯한 경서를 거의 미친 듯이 읽으며 삶의 고통을 달랜 적이 있었다. 결국 고통 속에서 그를 빠져나오게 만들어 주며 인생 전반에 걸쳐 그를 도운 것은 다름 아닌 <논어>였던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논어>는 ‘지금 읽기엔 너무 고전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병철은 물질만능인 이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어>를 읽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오직 이익만을 취하는 게 목적인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실 그랬다. 이병철은 기업 경영에 대한 책을 오히려 거의 읽지 않았다. 그는 경영학의 새로운 이론에 대해서 신뢰를 주지 않았다. 경영은 이론이 아닌 기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반드시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에 독서를 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따라서 책을 계통에 따라 읽는 경우도 거의 없고, 깊이 숙독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그 대신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죠, 소설까지.”

대기업의 회장이 소설을 읽는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소설은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야 한다. 중간에 독서를 멈추고 다시 읽는 경우가 생기면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거나, 그 감동이 반감되어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는 일도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금인 대기업 회장이 소설을 읽는다는 건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은 아무리 정상이라도 해도 선과 악, 합리와 불합리, 본능과 이성을 겸비하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해도 어느 순간에 악의 유혹에 무릎을 꿇을 수 있고,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선량해질 수 있다는 식으로 소설은 우리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병철은 틈이 날 때마다 임원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그중 가장 강조하는 게 소설을 읽으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인사관리의 기본적인 지식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병철의 독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그대로 이부진에게 옮겨졌다. 이부진의 집무실은 도서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열렬한 독서광이다. 그녀의 5층 집무실은 진귀한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와 같이 꾸며졌다. 지난 2001년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첫발을 내디딘 이 전무는 2004년 호텔신라 임원에 올라 집무실을 갖게 되면서부터 집무실 내부를 책으로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이부진의 집무실은 작은 서점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책을 살펴보면 일단 호텔경영 실무에 필요한 식음료 사업의 운영관리,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호텔 건축 및 인테리어 등에 대한 관련 서적들도 다량 보유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책은 사업기획, 전략경영, 마케팅, 유통관리, 서비스, 마켓 트렌드에 관련된 경영서이다.

회사 업무에 참고할 유용한 내용이 많은 책 가운데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외국서적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해외출장 시 직접 구입해 실무 담당자들에게 선물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독서에 대한 사랑이 크다.

이부진이 그간 올린 성과를 두고 판단하면 그녀의 독서가 얼마나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냉철하면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안목을 갖춘 차세대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독서였다.

이부진이 독서를 통해 얻은 것은 그가 경험을 통해 체득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영업이든 인테리어, 건축이든 그녀가 그 모든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일의 진행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병철이 그랬듯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비로소 그 일을 하는 직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독하게 자기계발을 하면서 많은 노력을 쏟았지만, 그 밑바탕은 평소 많은 책을 가까이하며 부단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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