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중국은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시진핑의 발언이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못 박았다. 시진핑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이같이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인민해방군의 참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기로 정부의 공식 입장과 논리를 결정해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황당한 독선이며 오만이고 강변이다. 진실된 정론(正論)이 무엇이든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중국이 그렇게 정하면 그만이라는 식 아닌가.

어느 나라나 과거의 잘못된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고 시인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정의로웠다고 미화하는 시진핑의 발언이 감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일면은 있다. 그렇지만 세계의 지도국이며 대국으로 발돋움 한 지금 마오쩌뚱(毛澤東) 시절의 잘못된 유산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주변국과 여러 나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국가의 ‘정론(定論)’이라고 들고 나올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것이 낫다. 진실을 호도함으로써 스스로 그들 국가의 체신을 깎는 일 아닌가. 현재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또 옛날의 중국 그대로여서도 안 될 것이다. 주변 당사국들은 말할 것 없고 세계 각국은 대국인 중국의 말에 이목을 집중한다.

이런 마당에 중국의 국가적 표현 능력과 외교적 수사 역량이 이거밖에 안 된다 해서야 체면이 서는가. 중국의 잘못된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우리이기에 이런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고언(苦言)을 한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중국의 공개적인 저런 발언에 필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안 좋은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보이는 것이 말이다.

만약 인민해방군이 참전했던 과거의 상황이 되풀이될 때는 그것이 정의로웠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염려스럽게도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은 심증을 버릴 수가 없다.

똑같은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급변사태 같은 경우에 유사한 군사 개입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북한과 저들의 군사 협력 무드는 왜 지금 저렇게 뜨거워지고 있는 것인가. 이를 볼 때 시진핑의 발언이 우연한 실언이었다 해도 그냥 넘기기가 찝찝한데 그 발언을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대못을 박고 나섰다.

그렇다면 무슨 메시지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중국의 관영 언론은 언젠가 ‘한국은 중국의 도움 없이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었다. 한국이나 세계 일류 국가들은 저렇게 거칠게는 말하지 않는다. 도무지 절제와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열 받고 감정이 상하는 것이야 애써 참아낸다고 하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주변국 특히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한반도의 주인은 한국이다. 우리가 엄연히 주인인데 주인을 무시하고 중국이 자기들 속셈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놓아두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대만과 티베트와 남중국해를 국가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이라고 하는데 북한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목숨 걸 한(恨) 맺힌 우리 고유의 영토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사시에 대비해 중국도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와 새 한 중 관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의논을 우리와 벌여 나가는 것이 현명하고 옳다. 되풀이해서는 안 될 불행했던 과거의 논리에 붙잡혀 부질없이 국민감정을 상하게 하고 공연한 경계심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중국과 같은 큰 나라가 큰 국제 정세의 흐름과 조화되지 않는 북중 관계의 작은 의리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세계 지도적 국가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기대하는 주변 국가들과 세계 여러 나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 쉽게 생각되어지지 않는가.

중국의 자극적인 언동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놀랍도록 침착하고 냉정하다. 차분하지만 단호함과 결연함이 묻어나는 것을 중국은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세련되고 우아한 선진 외교 어법(語法)이라는 것을 눈여겨 보아주기 바란다. 거친 말은 감정을 돋우는 데나 도움이 될 뿐이지 선린이나 평화나 행복을 창출해내지는 못한다.

한국과 중국은 어차피 손을 맞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나라다. 서로의 국익을 위해서만 협력하고 상생(相生)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도 세계의 평화도 두 나라의 협력에 달려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세계 정치 경제의 새 주역도 한국과 중국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필요에 따라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도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중요성이 중대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중국은 우리와 미래를 숙의하고 준비해야지 중국이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 정의로웠니 뭐니 하고 누구 열 받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국민감정을 들끓게 해 대국으로 우뚝 솟은 중국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일으켜 놓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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