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2018년 마지막 날이다. 올해 달력이 동그마니 한 장 남았을 때부터 송구영신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잘 마무리하면서 조용히 지내고자 했건만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때로는 들뜨게 했던 일들이 자꾸 필자의 눈앞에 어른거린다. 연말이 되면 언론이나 시민단체들 표적에 오르내린 대표적 상징은 ‘각종 논란으로 얼룩진 한해였다’는 것이니 이 말은 2018년 한해도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이 사회적 이슈로 달궈진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말 많고 탈도 많았던 2018년을 회억하노라면 시초부터 국민 기대치는 한껏 높았다. 2월에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물꼬가 틔면서 오랫동안 깜깜했던 남북교류가 급속도로 이어졌으니 그 결과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초유의 일로써 한미정상 간 북핵 폐기 논의가 이뤄낸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한반도 평화가 담보되는 쾌거에 열광했고 마음 설레며 기대했다. 세기적 관심사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며 남북정상 간 종전선언 합의는 올해 최고의 좋은 일로 인정받은 것이다.

금방이라도 좋은 과실을 딸 것 같았던 회담 결과가 뜸 들이는 정세를 보이는 지금이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에 한반도 평화의 열매를 따는 수확기가 아니라 아직은 배잉기(胚孕期)라서 물과 공기와 햇빛을 다 필요로 하는 시기니 당장 조급할 것은 없는 일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경기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아 많은 국민들이 불편해한다. 실업 파고가 높아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부일부빈익빈 현상으로 치달으니 우울하고 화가 치밀 뿐이다. 

올 한해에 또 미투운동은 어떠했던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우리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본이어야 할 정치·법조·문화예술·대학·종교계 등의 어두운 구석은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운동의 여파로 성차별 권력 구조가 당장 고쳐지고 우리 사회가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지대가 될 것으로 국민은 믿었다. 하지만 미투운동이 전개된 지 1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국회 상정 미투 관련법안 160여 가운데 5~6건 정도만 통과됐다. 정치권과 정부의 제도 개선 약속들은 휴지조각이 될 처지에 놓였으니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대형사고가 영락없이 반복된 올해다. 지난 1월 밀양의 한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사상자(사망 46명, 부상 109명)가 난 것을 시초로 서울 아현 KT 통신구 화재, 강릉 KTX 탈선 등 큰 사고들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특히 올해는 민생과 직결된 사회기반시설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라 국민이 더욱 불안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통신화재로 일순간 관할지역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던 인터넷과 유무선 전화가 먹통이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또 잘 달리던 KTX 열차가 탈선했다니 웬 날벼락인가. 정부가 해마다 반복적으로 큰 사고를 당하고 개선을 약속했지만 사고는 거침이 없고,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할 말이 있을까.

그런 마당에 국회는 또 어떠했던가. 이미 오래전부터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과연 올해에는 개과천선(?)했을까. 천부당만부당하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여전히 왕짜증이다. 국회의원들이 소속정당의 강령과 정강정책에 따라 국민 편익을 높이며 국가번영을 위해 나름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실적을 따져보면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음에도 성과는 낮다. 의원세비에 걸맞게 국민 대표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책무를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국민 대다수로부터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 그만큼 올해 실적이 빈 쭉정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의 실망은 크다.    

국정감사에 이어 정기국회에 들어왔어도 여차하면 여야가 티격태격했다. 격조 높은 의정활동과 협치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산국회 일정에서도 의정 중단사태를 만들어내더니만 막판 시간에 쫓겨 초치기 심사에다가 공개되지 않는 걸 빌미로 자기들의 의정비를 슬그머니 올렸다가 국민들에게 된통 서리를 맞았다. 국민에게 변명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까지 국민이 이런 국회상을 보아야 하며 잿밥에 신경 쓰는 의원들의 변명과 푸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2018년이 열리던 시기에 우리는 희망과 기대로 일상을 시작했지만 세밑에서는 실망과 허탈로 마감되고 있다. 올 한해 무엇이 우리를 설레게 했고 우울하게 했던가를 생각해보면 국가사회의 잘잘못들이 정치권과 정부, 정치인들로 귀결되고 있다.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불안해하지 않은 안전한 나라, 일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경기활성화, 그 위에 문화적 격조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국민 삶의 바탕이 되도록 정부·국회가 제대로 된 몫을 다 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모르는 것을 희망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2019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끈을 늦출 수는 없다. 새해에는 나라가 편안한 가운데 국민 웃음이 많아지는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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