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이럴 줄 알았다. 그해 겨울,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들고, 광장은 밤마다 빛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앞 다퉈 광장으로 나아갔고,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뒤에서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했었고, 그것은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광장의 군중들 앞자리에 낯익은 얼굴들이 슬그머니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정치하는 인간들이 광장으로 나서면서,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일들이 흘러갔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은 바뀐 세상이 몹시 못마땅했지만, 그중 일부는 그래도 혹시 진짜 좋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며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몹시 추웠지만 30년 만에 새로 열리는 올림픽이라 사람들 마음이 설렜고, 북쪽 사람들이 내려와 시찰을 하고, 공연을 하고, 경기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응원을 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찜찜하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면서 가만히 지켜보았고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나라다운 나라에, 국민다운 국민으로 살아가겠구나 싶어 절로 흥이 나던 참이었다. 

사람들을 일시에 충격과 슬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큰 배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고 항구를 지키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일도 잊혀져갔다. 그런데 배와 함께 건져 올려질 것으로 생각됐던 진실은 어디로 갔는지, 그걸 제대로 봤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뭐가 잘못 됐고, 누가 무엇을 잘못을 했는지,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래서 이제는 안전하게 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생겼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모른 채 그렇게 배의 모습도 TV에서 사라졌다. 좀 더 안전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했지만, 세상이 더 안전해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을 장악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꾸렸고, 앞서 세상을 부조리하게 만든 자들을 벌하는 데 여념이 없다. 부조리한 것들은 모조리 콩밥을 먹게 하여 정신을 차리게 하고 다시는 세상에 부조리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기가 겨울 찬바람보다 강하고 매섭다. 처음 그들이 세상을 호령할 때 사람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준 것은, 그들이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제발 좀 잘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잘 해서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을 착취하는 인간을 내쫓은 동물들이 농장을 장악했지만, 그들을 이끄는 돼지들은 인간들 흉내를 내며 결국 인간들과 같은 무리가 되고 만다. 

‘동물들은 다시 창문으로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르랴, 험악한 입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은 고함소리, 탁자 치는 소리, 의심에 찬 눈길, “그게 아니라니까”라며 맹렬하게 부정하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똑같았다. …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우리도 분간할 수가 없다. 사람만 바뀐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그나저나, 내년이 돼지해라는데, 살림살이나 좀 나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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