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한국 세입자들, 특히 주택 세입자들은 올해도 정부와 국회로부터 홀대를 당했다. 각자도생에 익숙한 한국사회는 주거권 개념이 약한 사회다. 모든 부문 가운데서 정부와 국회가 주거권 의식이 가장 약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는 정부가 주거권 의식이 약하다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주거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는 정당이 매우 적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때만 주거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선거가 끝나면 자신들이 한 말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자유한국당은 주거문제에 아예 관심이 없다. 철저히 건설 자본과 임대인 편에 서 있다. 이들 두 거대 정당 말고 다른 정당들은 주거문제에 관심이 많을까? 그렇지 않다.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은 물론이고 정의당도 주거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정당들 가운데 두 거대 정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서민과 중산층 대변’은 겉으로 내건 슬로건일 뿐 실제는 기득권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이다. 때론 다르게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정책을 잘 뜯어보면 방향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지층을 뭉치게 하려는 의도로 자신들은 상대 당과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하는 것 같다. 

주거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두 거대 정당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차이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세입자 대중의 이해와 직결되는 계약갱신제와 전월세상한제를 주장한 반면에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이들 제도를 적극 반대했다. 이때는 두 정당이 매우 다른 것처럼 보였다. 

2016 총선 때 민주당은 세입자 권리 보호 제도 도입을 공약했음에도 선거 이후 이들 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집권 이후에는 민주당에서 이들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민주당이 자신이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었음에도 선거용으로 세입자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는지 의심을 사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 때도 계약갱신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공약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 바른미래당의 전신인 바른정당은 지난 대선 때 계약갱신제와 전월세한제를 공약했다. 대선 이후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대선 때만 잠시 주장하고 대선이 지나니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당도 두 제도를 지지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대선 이후 국민의당에 속한 의원들이 그대로 옮겨 창당한 당이 민주평화당이다. 국민의당의 주거정책을 계승해야 할 정당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선 이후 민주평화당은 계약갱신제와 전월세상한제를 열심히 주장하는 편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스럽다. 

정의당도 이들 세입자 보호 제도를 공약했지만 대선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데 아쉬운 일이다. 원내 의석 5석을 가진 진보정당이 세입자 보호 제도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주거 당사자가 모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며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대한민국의 주거의 역사는 크게 바뀔 것이다. 1석을 가진 민중당은 최근 기존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주거권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해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정당도 주거 전담부서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2018년 한 해가 저물고 있지만 세입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내년 봄에 이사가라고 하면 어떡하나, 많이 올려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에 여러 정당이 있지만 세입자 권리 보호 정책을 채택하고 실천하기 위해 끈질기게 행동하는 정당은 아직 없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는 세입자다. 자신의 당을 지지하는 세입자를 생각해서라도 세입자 보호 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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