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 한 해는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군 큰 이슈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어느 때보다 올해는 공정하고 행복한 한국사회로의 변화를 바라던 국민의 열망이 높았다.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슈들이 적지 않아 국민청원의 목소리도 컸다. 본지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올해의 10대 키워드를 선정해 10회에 걸쳐 재조명해본다.

 

 

 

밀양세종병원부터 국일고시원까지

많은 인명피해 발생해도 바뀌지 않아

허울뿐인 안전점검… 대책 마련 시급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목숨을 잃고, 40명이 부상을 입었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는 유가족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아픔을 줬다.

충격이 미처 가시기 전인 지난 1월 26일 오전 7시 31분께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1층 응급실 내 탕비실 천장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다. 화재 발생 1시간 40여분 만에 큰 불길은 막았지만 화재 초기부터 환자들이 입원 중인 2~6층으로 유독성 연기가 가득 차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컸다. 당시 화재로 입원 환자와 의료진 등 47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연기와 가스에 의한 질식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밀양 세종병원을 찾아 “화재 안전관리가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형 화재 방지를 위해 전국 29만개 시설에 대한 국가 안전점검 대진단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 9일 오전 5시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고시원 거주자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크게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또 같은 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의 통신구 화재가 일어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틀 넘게 통신장애를 일으켜 서울 서대문·마포·용산·중·은평구 등 5개 구와 일부 경기 고양 시민의 불편을 초래했다. 유·무선 전화 통화나 IPTV 시청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 현금지급기 사용, 병원 내 환자 진료 등 다양한 분야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소방청·국방부 업무에도 차질을 빚었다.

밀양세종병원화재현장. ⓒ천지일보 2018.2.8
밀양세종병원화재현장. ⓒ천지일보 2018.2.8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안전한 대한민국’과 걸맞지 않게 올해 유난히 화재가 자주 발생했다. 서울시만 봐도 그렇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올해 불이 더 자주 났으며, 사상자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지난 10월까지 일어난 화재는 모두 5372건으로, 2017년 같은 기간보다 7.6%(380여건) 늘었다. 인명피해도 전년 대비 매우 증가했다. 사망자는 38명, 부상자는 25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35.7%, 36.5% 증가했다.

과거 대형 화재에서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돼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 시마다 문 대통령은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지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반복된 사고들은 전형적인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밀양세종병원 화재는 전기적 결함에서 시작됐다. 건물을 불법으로 개조하면서 전기배선 등의 문제가 생겨 합선(절연파괴)으로 불로 번졌다. 스프링클러는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병원 측은 13년간 불법 증·개축을 강행하고 밀양시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가 시작된 응급실 내 탕비실은 2005년 제작된 평면도에 없는 공간이었으며, 많은 사망자가 나온 2층의 도면도 달랐다. 밀양시와 소방당국이 2011년 2월 합동 점검 때 불법 건축물을 적발했지만 시정조치를 내리는 것에 그쳤다. 병원은 불법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 3000만 원가량만 내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국일고시원 화재의 경우도 비슷하다. 고시원 스프링클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보용 화재 감지기와 비상벨, 완강기 등은 설치돼 있었으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안전대진단 기본계획’에 따르면 화재 취약시설로 분류된 쪽방촌·고시원·지하상가 등은 점검 대상이지만 국일고시원은 점검을 받지 않았다.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련의 사고들은 정부의 화재사고 예방과 대처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상구와 소방시설만 제대로 갖춰도 화재 발생 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기 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을 때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해 별다른 인명피해가 없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참사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으나 실효성이 적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시설 자체안전점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노인복지시설 8581개소 중 자체 점검이 이뤄진 비율은 74.7%나 됐다. 10곳 중 7곳이 안전점검을 형식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점검을 해도 문제다. 과태료 부과, 시정명령 등 행정 조치를 한다지만 권고사항이라 소방안전 시설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화재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안전정책과 강력한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노년유니온 등 15개 시민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걸었지만 정치적폐 청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민생적폐, 주거적폐, 사회적폐 청산엔 관심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제천참사, 밀양참사, 이전의 고시원 참사에서 스프링클러가 없거나 작동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걸 생생히 목격하고도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며 “이번 사고는 사회의 취약한 구조 문제로 발생한 사회적 참사라고 봐야 한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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