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 고향친구들이 매일 글을 올려 근황을 알려오고 있는데 서울서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그 방에 수시로 글을 올려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신호가 와서 열어보니 “좋은 아침, 행복한 하루 되세요” 메시지가 뜨면서 노래 한 곡조가 흘러나온다. 고향친구의 정성을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보니 연말 뒤숭숭한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좋은 노래다. 그걸 듣고 생각이 나서 가끔씩 들어보는 ‘스카브로우의 추억’ 노래를 다시금 틀어본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에다가 박인희씨의 노래를 연거푸 듣다보니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노래 속의 스카브로우(Scarbrough)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그곳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가사 속 장소보다는 박인희씨의 번안곡 노래 속 마을로 연상되기 십상인바 “추억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 사랑이 살고 있는 가고 싶은 나의 고향…” 노래 가사에서처럼 그곳은 사랑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고향일 거라는 생각이 필자에게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두 곡의 노래를 반복해 들으면서 영화 주제곡을 부른 가수가 미국인이니 그 쪽 어디가 아닌가 짐작했지만 알고 보니 스카브로우는 영국의 작은 마을이었다.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노스요크셔의 북해에 자리한 곳으로 미국식 발음으로 ‘스카브로우’였지만 현지 발음으로 ‘스카버러(Scarborough)’다. 영화 ‘졸업’ 속에 나오는 주제가의 원제는 ‘스카브로우의 시장(Scarborough Fair)’인데 해변과 인접한 이 마을은 중세시대부터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렸고 유럽 대륙에서 몰려드는 상인들로 인해 중요한 교역 거점이 됐던 곳이다. 당시부터 시장에서는 상인들에다가 서커스단, 구경꾼들이 몰려 시장은 축제의 장이 되곤 했다.

16세기 무렵부터 당시 음유시인들에 의해 이 시장을 주제로 한 발라드 형태의 노래는 가사나 곡조가 여러 가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졸업’ 영화 속 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66년 이 지역을 여행 온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이 현지 가수에게 전해 듣고 편곡해서 부른 노래로, 그 이듬해 영화 ‘졸업’에서 배경음악이 되면서 미국을 위시한 세계인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졸업’ 영화가 상영되고 특히 박인희씨가 ‘스카브로우의 추억’이란 번안곡으로 부르면서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와 함께 유명세를 탔던 것이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노래와 박인희씨의 노래가사가 각기 다르다. 영화 주제가는 “스카버러시장에 가는 거니?/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와 타임./ 그곳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안부를 전해 주게, 그녀는 예전의 연인이었으니까…”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데, 후렴구로 나오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와 타임은 채소 이름이다. 하기야 시장이 소재이고 관련 내용들이니 채소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노래 후렴구에서 네 종류의 허브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액막이로서 상징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파슬리(Parsley)는 쓴맛을 없애는 식물로 중세에는 영적 의미로 파악되기도 했는데 소화 기능을 도와주는 식물이다. 세이지(sage)는 수천년 동안 이어지는 작물로 내구력이 있다. 로즈마리(rosemary)는 사랑, 정절, 추억을 의미하는 바, 유럽에서는 신부의 머리에 작은 로즈마리 가지를 꽂는 관습이 이어지고 있으며, 또 타임(thyme)은 ‘용기’를 상징하는데 당시의 기사(騎士)들이 전쟁이나 싸우러 갈 때마다 방패에 타임 모양을 새긴 것은 용기를 나타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후렴구에 등장하는 네 가지 허브의 의미는 각각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스카버러 시장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1966년에 낸 3번째 앨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드 타임’에 ‘스카버러 페어/아리아’로 수록돼 불러지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다. 영국 스카버러 지방에서 구전돼 오는 민요를 편곡해, 또 그 속의 남녀 사랑 이야기를 다르게 각색했다. 마치 베트남전쟁에서 죽어간 청년이 고향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첨가하면서 당시 미국사회의 반전운동과 맞물리면서 공전의 빅히트를 쳤던 것이다. 그러기에 박인희씨가 번안한 곡에서 가사마저 같은 맥락에서 “추억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돌아가리. 내 사랑이 살고 있는 가고 싶은 나의 고향…” 청랑한 목소리로 애절하게 불렀으니 스카브로우의 추억은 지금 들어봐도 선율이 아름답고 고운 사랑이 우러나오는 멋진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노래를 부르거나 듣다보면 그 당시 모습들이 생각나게 마련인데, 필자는 노래 배경 등을 모르고 그저 흥얼거려 왔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전된 지금에는 궁금증 속속들이 알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 됐고, 그 덕분에 지금은 노래 배경과 사연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에 명화 ‘졸업’에서 보았던, 두 청춘 주인공들의 젊은 날의 사랑과 고뇌가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정치, 경제 등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접고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나 ‘스카브로우의 추억’ 노래를 들으며 옛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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