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며 여러 번의 ‘졸업’을 치르며 지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삶의 여정에서 맞이하는 졸업 중 자신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지 못하는 초중고교 과정의 졸업도 있지만, 진정한 졸업으로는 철이 들며 사회로 진출하는 대학 졸업을 ‘제1의 졸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정년이 ‘제2의 졸업’이라면 세월이 흐르며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하는 ‘제3의 졸업’은 ‘죽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화살처럼 빠르게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무술(戊戌)년을 보내며, 정년이라는 제2의 졸업 후 벌써 여섯 번째 해로 다가오는 기해(己亥)년을 바라보며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빠른 세월에 대한 상념으로 가슴이 찡해온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무술년의 여정에서 그동안 지내온 삶을 돌아보고픈 마음이 들어 컴퓨터를 열고 오래전부터 기록해오던 글들을 뒤져보는데, 예전에 열어보았던 ‘생각하는 삶’이라는 글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50대 초반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과 아들을 생각하며 썼던 글을 칠순을 지내고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글에 담겨 있는 한 구절을 옮겨본다.   

“사춘기나 청년기 시절에는 주위 사람들의 간섭 없이 자신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지만 삶을 보람 있게 산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세상사가 진행될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자이고, 권력자이며 스타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에 그러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한정되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읽으며 칠십년 넘게 지내온 삶의 여정에서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달려왔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잠기며, ‘인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항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은퇴 후의 삶은 덤이 아닌 ‘제3의 인생(Third Age)’이라고 했던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맞이하는 은퇴 후 30년의 삶을 ‘뜨거운 인생(Hot Age)’이라고 다시 제안한 바 있다. 지금 뜨거운 인생을 지내고 있는 내 삶에서 새롭게 주어진 ‘선택’과 ‘변화’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며 젊은 시절 못지않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내가 축복을 받고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니 약 2만 5700일이 넘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보니 62만 시간 정도나 된다. 100세 장수시대라는 말이 풍미하고 있지만 우선 85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새로 맞이할 날 수는 약 5400일 정도이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보니 약 12만 9천 시간 정도가 된다. 이 시간은 지금까지 삶을 살아온 62만 시간에 비해보면 매우 짧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삶의 여정에 남은 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며 ‘뜨거운 인생’을 살아나가야 할까. 

삶을 살다보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거나 힘든 때도 많지만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새로 다가오는 기해년을 바라보며, 어제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 같은 내일도 없다는 생각에 잠겨 ‘인생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2박 3일 여행’이라는 말이 떠올려진다. 2박 3일의 여행에서 지나간 어제는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오늘이 어제가 되고, 오늘의 내일이 다시 오늘로 다가오는 것은 세월의 순리이다. 

졸업한 다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제’가 되는 학창시절이 자신의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매우 소중한 ‘오늘’이었듯이 정년이라는 제2의 졸업 후 맞이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도 매우 소중한 오늘이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을 따라 건강과 활동력, 경제력, 할 일, 친구 등이 줄어들고 있는 제3의 졸업 여정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보다 잃지 말아야 할 작은 것들을 지켜보고자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우리 삶에서 ‘오늘’ 그리고 ‘지금’이 바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내일을 열어가야 하는 날이 오늘이며, 시간상으로는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가슴과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무술년 단상(斷想)’에 잠겨 기해년의 삶에 ‘뜨거운 인생’을 위한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 보고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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