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 한 해는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군 큰 이슈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어느 때보다 올해는 공정하고 행복한 한국사회로의 변화를 바라던 국민의 열망이 높았다.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슈들이 적지 않아 국민청원의 목소리도 컸다. 본지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올해의 10대 키워드를 선정해 10회에 걸쳐 재조명해본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검찰이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확보했다. 이는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착수한지 약 3개월 만이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전날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에서 문서파일 등이 저장된 USB를 압수해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천지일보 2018.10.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자유·평등·정의’에 빨간불이 들어온 대법원. ⓒ천지일보 2018.10.1

논란 시작, ‘판사 블랙리스트’

강제징용 등 재판 고의 지연

관련자 수사 영장 거듭 기각

‘방탄판사단’ 비아냥 듣기도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올 한해 사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언제나 공정함을 유지해야할 법원에서 재판을 거래하고, 법관들의 비리를 덮어주고, 지도부의 성향과 반대되는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이른바 ‘사법농단’ 논란이었다.

올해 6월 시작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여러 차례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각종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번번이 이를 기각했다.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이어지며 ‘방탄판사단’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는듯한 모습에 시민들은 사법부의 판단을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모든 의혹에 중심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모두 거친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염원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비밀리에 교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몇몇 재판에 개입하며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6.1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6.1

이 사건은 지난해 초 양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행정처가 특정 성향 판사들을 탄압했다는 내용과 관련, 자체 진상조사 과정에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불거졌다.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지며 사법농단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선 판사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6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처음 열렸고,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9월 퇴임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업무를 시작하면서 조사가 본격화됐다.

올해 1월 추가조사위는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문서가 다수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건 중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대법원과 청와대가 교감을 나눴다는 문건이 나왔다. 대법관들은 전원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올해 2월 ‘사법행정관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발족했다. 후속기구 구성이 필요하다는 김 대법원장의 의중이 담긴 결과였다. 그리고 5월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와 사전교감을 통해 물밑 조율하고, 재판 거래를 통해 상고법원을 현실화시키려는 움직임은 사실로 드러났다.

언급된 재판은 한 두건이 아니었다. ▲원세훈 국정원의 여론조작 사건 ▲KTX 여승무원 복직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콜텍 해고노동자 사건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등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유가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법원 민사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총 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천지일보 2018.11.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유가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법원 민사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총 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천지일보 2018.11.29

이에 5월 29일 KTX 해고승무원들은 대법원 대법정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일반인이 대법원 대법정을 무단 점거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재판은 뜨거운 감자였다. 양승태 사법부가 지연시키려 했던 이들 재판은 공교롭게도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화된 올해 하반기 모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94)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1월 29일엔 대법원이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89)씨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고(故) 박창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23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근로정신대 피해자가 확정판결을 받은 건 지난 2012년 소송 제기 후 6년 만이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8년 만이었다. 이 판결로 일제 강점기였던 1944년 전범기업에 끌려가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74년이 지나서야 자그마한 위로라도 받게 됐다.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 (출처: 천지일보DB)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 (출처: 천지일보DB)

판결 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 이상갑 변호사는 “대법원은 이 사건이 재상고 접수된 뒤에도 5년을 붙잡고 있다가 이제야 선고를 했다”며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해 이익집단 같은 행태를 보이면서 외교부와 함께 재판을 미뤄왔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재판을 지켜보는 여론은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이들에게 분노했다.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은 사법농단 수사에 속도를 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핵심 실무를 담당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했고, 양승태 사법부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둘은 헌정사상 첫 구속되는 대법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두 대법관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사법농단의 결론은 해가 넘겨야 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사법부는 대법원 정문에 새겨진 대로 ‘자유·평등·정의’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시민들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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