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 한 해는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군 큰 이슈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어느 때보다 올해는 공정하고 행복한 한국사회로의 변화를 바라던 국민의 열망이 높았다.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슈들이 적지 않아 국민청원의 목소리도 컸다. 본지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올해의 10대 키워드를 선정해 10회에 걸쳐 재조명해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출처: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출처: 뉴시스)

대법원·헌재 판결 찬반 갈려
병역 거부자들 57명 가석방
‘36개월’ 대체복무 마련 중
종교계 “가짜 양심 줄설 것”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우리나라 국민으로 태어난 남성이라면 반드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이 지켜야 할 4대(국방·근로·교육·납세) 의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젊은 남성들은 양심 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상대의 생명을 빼앗아갈 수 있는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해 왔다. 이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사회적 문제가 됐다.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올해 대전환점을 맞았다. 대법원이 지난 11월 1일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는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2004년 대법 전원합의체 유죄 선고 이후 14년 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는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현역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 판결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1항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지금까지 성인 남성이 병무청의 소집통지서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도피하면 3년 이하 징역이라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지난 60년간 병역을 거부한 1만 9000여명이 형서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거부자 99%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병역의무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종교·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씨가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병역법 위반 전원합의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출처: 뉴시스)
종교·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씨가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병역법 위반 전원합의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출처: 뉴시스)

앞서 헌법재판소는 올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병역종류조항)과 관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대법 선고 또한 전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올해 인권을 증진시킨 최고의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꼽기도 했다.

대법 판결 이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 또한 지난달 30일 형이 확정돼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됐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거 가석방했다.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가석방이 결정된 57명이 의정부교도소, 수원구치소 등 전국 교정시설에서 출소했다. 이번 가석방 조치로 수감자는 14명으로 줄었다.

국방부는 대체복무 방안을 ‘36개월 교도소 근무’로 정리하는 모양새다. 빠른 시일 내에 정부의 단일안을 설명하고, 관련 법률안(병역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계획이다. 국방부가 복무 기간을 36개월로 정한 것은 산업기능요원과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 기간이 36개월 안팎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형평성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국방부는 공청회를 열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36개월 복무는 현행 21개월에서 2021년 말까지 18개월로 단축되는 육군 병사 복무 기간의 딱 2배다. 대체복무는 2020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달 초 대검찰청은 전국 검찰청에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판단지침’을 내렸다. 예비군훈련 거부 등 유사 사건에 관한 심리도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참여연대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일각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종교계도 병역을 기피하는 이들이 종교를 악용(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할 것을 걱정하며, 국방부 등 정부에 철저한 검증(종교적 신념·양심의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연합은 “헌재에 이어 대법원까지 병역 거부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앞으로 종교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줄을 설 것”이라며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는 애국심을 양심으로 둔갑시킨 자들의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의 완전한 시행까지 상당 기간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의 대안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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