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한동안 뜸하던 종교 간의 갈등이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파문을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봉은사 땅밟기’라는 기괴하고도 섬뜩한 행태는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이 24일 일요법회에서 거론하고 이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됨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신들의 전공(?)을 자랑하듯이 올린 동영상은 엽기 그 자체다.

심야에 한 남성이 봉은사 법당에 몰래 들어가 기도를 하고 심지어는 법당에 들어가 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여성도 있다. 이 동영상에서 ‘찬양인도자학교’라는 단체 소속의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불교는 우상숭배”라고 규정하고 봉은사 자리에 기독교가 선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이 터져 나왔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만들었다는 이 동영상에는 “평화의 땅, 밝음의 땅이었던 대구에 동화사, 지장사 등이 창건되면서 대구는 사탄을 숭배하는 땅이 되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은 특히 대구 가스폭발사고와 지하철 참사, 대구 경제의 쇠락, 인구 감소, 이혼율 전국 최고 등이 모두 대구 팔공산에서 큰 굿판이 해마다 두 차례씩 열리고, 동화사에 통일대불 우상이 세워지는 등 우상이 창궐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 갈등, 정확히 표현하면 일부 극단적 개신교도들에 의한 불교 등 타종교 폄훼활동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2008년에는 제주도 원명선원에서 750여 개의 불상 머리가 잘려나갔다. 경찰에 잡힌 30대 청년은 “절을 교회로 만들기 위해 파괴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달 후에는 청주 보현사에서도 불상 3점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이 밖에도 석탑파손과 단군상 및 장승 훼손 행위 등은 부지기수다.

뿐만 아니다. 일부 기독교단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 저명한 신학자를 출교시키기까지 한 적이 있다. 이른바 1992년에 일어난 감신대 ‘변선환, 홍정수 교수 출교사건’이다. 당시 변 교수 등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했다가 결국 교단에서 쫓겨났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한 세기가 지났다.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이 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동안 불교, 유교, 전통종교 등과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유럽의 발칸반도나 중동지역처럼 인명살상을 초래하는 무력충돌로까지 비화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에서는 그간 이 갈등의 와중에서도 많은 선각자들이 ‘종교다원주의’의 슬로건 아래 상생과 공존을 추구해온 역사가 있다. 종교다원주의란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구원은 교회 밖에서도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구한말 선교과정에서 근본주의 신앙에 뿌리를 둔 한국 개신교의 다수는 ‘구원은 기독교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개신교계 내에서 아직도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함께 공존하자는 취지의 ‘다문화가정 캠페인’에서 보듯이 지금은 다양한 가치와 신념이 공존하는 시대다. 이젠 종교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잠시 종교 간의 소통과 상생을 논의하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천주교 원로이신 정양모 신부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오직 예수’라는 것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너무 존경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옆을 잠깐만 돌아보면 공자님도, 부처님도, 마호메트도 있다. 하느님의 신비나, 불교의 공이나 진여는 걷잡을 수 없는 세계 아니겠는가.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많다. 부처님 코스, 공자님 코스, 무하마드 코스가 있다. 나는 예수 코스를 따르고 있다. 다른 코스를 모르다 보니 예수 코스만이 너무너무 좋다. 각자 자기 코스밖에 안보이니까 오직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선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아주 좋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불자들도 만나고, 유생들도 만나야 하니 생각이 넓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삶, 하느님이고 진여이고, 공이다. 참삶에 이르는 길은 예수다. 그게 예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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