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봉길 의사, 모수 그리고 변옥
[기고] 윤봉길 의사, 모수 그리고 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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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윤봉길 의사 순국 86주기(12월 19일)를 맞아 의사께서 조국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는 단초가 된 글 한편을 소개한다. 윤의사가 쓴 한시집 ‘옥타(玉唾)’의 뒷 표지에 ‘모수자천’과 ‘변옥’에 관한 글이 있다. 이글 말미에 통감 권3이라고 그 출처를 밝혔듯이 윤 의사는 서당에서 유학에 매진할 때 ‘통감절요’를 읽고 큰 뜻을 세우며 감명 받은 글귀를 인용해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모수여비자천(毛遂如非自薦, 모수가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지 않았다면) 개가영탈(豈可穎脫, 어찌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겠는가) 변옥여비자수(卞玉如非自售, 변옥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경지위석(竟止爲石, 끝내 돌(연석燕石)에 그쳤으리라).

모수는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이었다. 조나라는 효성왕(孝成王) 9년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망국의 위험에 처하자 효성왕은 평원군에게 이웃나라 초(楚)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게 했다.

문무를 겸비한 사람 20명을 대동하고 가게 된 평원군이 19명을 선발한 다음 나머지 한명의 선발을 놓고 고심할 때 식객인 모수가 스스로 자천하고 나섰다. 평원군이 그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그를 미덥지 못하게 여기자 모수는 “이번에 주머니(동행)속에 넣어 주기만 한다면 뾰족한 송곳 끝뿐만 아니라 그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다”고 말해 평원군은 그를 선발했다.

평원군이 초나라 왕과 회담을 했지만 타결을 보지 못하자 모수는 칼을 뽑아 들고 초나라 왕에게 나아가 “왕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금 왕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습니다. 초나라는 땅도 비옥하고 군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로부터 종묘를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진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설득해 합종(合從)의 협약을 맺게 했다.

합종 덕분에 조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평원군은 삼촌지설(三寸之舌)이 백만 대군보다 위력이 크다면서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자기가 자신을 추천하는 것을 모수자천이라고 한다.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는 형산(荊山)에서 옥의 원석을 발견해 여왕(厲王)에게 바쳤으나 이를 옥장(玉匠)이 쓸모없는 돌에 불과하다고 판정해 분노한 여왕은 변화의 다리를 절단했고,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다시 원석을 바쳤는데 또 가짜라는 모략을 받고 나머지 다리도 잘렸다. 이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또 원석을 바치려 했는데 다리가 없어 갈 수가 없는 변화는 원석을 안고 슬피 울었다. 문왕이 이를 듣고 원석을 가져다 반으로 갈라보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빛깔을 가진 벽(璧, 벽은 옥이라는 뜻)이 나왔다.

문왕은 변화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했다. 즉 화씨벽(和氏璧)이다. 쉽게 말해 화씨벽은 변화가 발견한 변옥(卞玉)이다. 화씨벽은 진나라의 왕이 자기나라 15개성과 바꾸자고 제의할 만큼 가치가 큰 천하의 보물이다. 반면 연석(燕石)은 하북성 연산(燕山)산맥의 돌로 검붉은 색 때문에 옥처럼 보이지만 돌에 불과하다.

윤 의사는 조나라의 모수처럼 스스로 나서 나라를 위해 몸을 일으킬 것과 조국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쳐 변옥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하고 스스로 상해로 나아가 조국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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