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18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설명한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응징했던 문재인 정부가 그 핵심 원인이 됐던 청와대의 권력남용을 어떻게 다시 되풀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강한 불만이기도 하다. 게다가 촛불혁명으로 일궈낸 문재인 정부에서 또 민간인 사찰이라니, 추호도 그런 일이 없다는 뜻으로 김의겸 대변인은 ‘유전자’까지 언급한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권처럼 국정원이나 청와대 권력을 동원해 민간인 사찰에 나섰다고 보기엔 아직 무리다. 청와대 특감반원으로 활동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 내용을 그대로 믿기엔 아직 시기상조일 뿐더러 김 수사관이 청와대에서 수집한 첩보를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감찰업무를 담당해왔던 김 수사관이라면 수집된 첩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무차별적 폭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선민의식부터 버려야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민간인 사찰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청와대 대응도 그만큼 강력해 보인다. 김 수사관이 첩보 내용을 흘릴 때마다 청와대가 적극 부인하며 ‘팩트체크’에 나선 것도 그런 배경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기본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며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장이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제출된 것만 봐도 청와대의 대응은 생각보다 강경하다.

김태우 수사관은 자신이 우윤근 러시아 대사 등 여권 고위 인사와 관련한 비위 의혹 첩보를 상부에 보고한 것 때문에 부당하게 징계를 받아 검찰로 복귀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 재직 당시인 11월초 경찰청을 찾아가 지인이 연루된 사건의 수사 정보를 사적으로 알아봤으며 이에 징계를 받아 원대 복귀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김 수사관이 왜 검찰로 되돌아 갔느냐보다 김 수사관이 폭로한 첩보를 청와대가 어떻게 접근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처리했느냐가 핵심이다.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는 말 그대로 ‘개인적 일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 수사관이 수집한 첩보는 청와대 근무할 때 수집한 자료이며 그중에 상당수는 상부에 보고된 내용이다. 상부의 어느 선까지 보고가 됐는지 그리고 상부의 어느 선에서 지시가 이뤄졌는지는 사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 수사관이 검찰로 돌아갔든 또는 설사 구속이 됐다 한들 그 첩보 내용까지 ‘독수과실(毒樹果實)’이라는 이유로 뭉갤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 권력에 대한 ‘신뢰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김태우 수사관은 우윤근 대사에 대한 비위 첩보를 보고했지만 청와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에게도 보고가 올라갔지만 오히려 김 수사관 자신이 청와대의 감찰 대상이 돼서 징계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윤근 대사의 비위 내용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내용이며 또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청와대 권력이 알아서 뭉갠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 아닌가.

한국도로공사 일부 휴게소에 들어간 이른바 ‘우제창 커피머신’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 동료 의원이며 원내 지도부까지 함께했던 이강래 사장과 우제창 전 의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커넥션 여부’가 핵심이다. 어느 신문이 먼저 보도를 했는지 또는 어떤 의원이 질의를 했는지는 사족에 불과하다. 김 수사관의 첩보를 보고받고 청와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청와대 민정팀 본연의 임무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김 수사관 탓만 한다면 이것이 옳다는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특유의 ‘선민의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물론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독점일 수는 없으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가는 역사적 동력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고 ‘내 편과 네 편’을 갈라치기 한다면 그 때부터 국정은 무너지는 일만 남은 것에 다름 아니다. ‘편가르기’ 해서 성공한 정부가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김태우 수사관을 비난하고 고발하는 일 못지않게 청와대 권력부터 하루빨리 중심을 잡아야 한다. 촛불혁명 이후의 민심이 지금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절박한 심정으로 살펴야 한다. 우리가 옳고 우리가 선(善)이라는 생각은 이젠 정말 금물이다. 이미 옳지도 선도 아닐 뿐더러 그런 생각이 ‘새로운 적폐’까지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권력이 논란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불만이지만 자칫 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판이 아니라 ‘오만’에 가깝다. 청와대 권력의 오만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박근혜 정부의 참상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역사적 단죄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범 이후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히 20대 지지층의 이탈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추운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목 놓아 외쳤던 그 청춘들이 벌써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두렵지 않은가. 내일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경고로 들리지 않다는 말인가. 그 어떤 여론에도, 그 어떤 비판에도, 그 어떤 의혹에도 꿈쩍 않는 청와대 권력의 ‘단단함’이 오히려 슬프고 또 불안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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