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차마 못 버릴 애물

서상만(1941~ )
 

 

눈 내린 아침은
떠난 누가 꼭 돌아올 것 같다
하얗게 지워진 오솔길을 물어
발자국 폭폭 곱게 찍으며,

행여 간밤 꿈길
나 몰래 다녀가지는 않았을까
살포시 덧창을 열어본다.

맑고 찬바람 한 줄기
처마 밑 장명등을 찰싹일 뿐
허공엔 아직도 성근 눈발

 

[시평]

눈은 우리가 잠이 든 사이, 마치 축복과 같이 아무러한 소리 없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 눈.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면, 언제 그렇게 왔는지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포근한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다가와 있다. 이렇듯 다가오는 눈은, 그래서 마치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라도 주는 것인 양, 우리를 설레게 한다.

아침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그 풍경 속, 눈은 가장 순결한 모습으로 하얗게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어느 누구도 밟고 지나가지 않은 그 순백의 모습으로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한 눈을 바라보면, 그 순백의 눈을 밟고 그리운 사람이 찾아올 듯한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순백의 눈을 밟으며, 하얗게 지워진 오솔길을 물어 발자국 폭폭 곱게 찍으며 우리가 잠든 그 사이에 다녀갔을 듯한 그 그리운 사람.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환상의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이 온 아침이면 잠시나마 이러한 상상으로 우리는 행복해지기도 한다. 눈이 내려 쌓인 아침, 그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며, 우리의 삶 문득 풍요로워진다. 이 잠시나마 풍요로워지는 그 순간,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 시인에게는 차마 버리지 못할 그 ‘시(詩)에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윤석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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