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연말을 맞아 각종 모임이 줄을 잇고 있다. 필자는 농구 모임을 비롯해 고교 및 대학 동기, 군대 전우, 사회단체 모임 등에 참석했다. 수년 전부터 느꼈던 바이지만 올해 모임에는 특히 참석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회갑, 칠순, 팔순 생일 축하연을 가진 프로농구인들 모임에는 축하를 받아야 할 대상자들 중에 3분의 1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매년 참석인원이 줄어들고 있는 고교 및 대학동기 모임, 군대 전우 모임 등에도 올해 예상했던 것보다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점차 나이가 많아지고 사회생활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이 줄어드는 것은 비단 나이듦만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 20~30대까지도 각종 운동 경기와 취미 모임, 학연, 혈연, 지연 모임 등이 점차 퇴색해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한 방향의 특성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 교수는 지난 2009년 국내에 출간된 명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1960년대부터 점차 원자화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분석해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사회적 자본’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볼링을 치는 사람들은 늘었는데, 정작 볼링 리그 참가자는 줄었다. 미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혹은 가까운 가족들하고만 볼링을 친다”고 말한다. 혼자서 볼링 치는 사람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이 없듯이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마치 ‘나 홀로 볼링’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줄어들면 사회의 위기를 넘어서 정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사실 스포츠는 사회적 자본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녀노소가 가리지 않고 스포츠를 감상하고 직접 참여하면서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익히고 배우기 때문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준법정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성, 승패가 분명하게 가려지는 투명성, 상대를 배려하는 양보와 타협 등 사회적 자본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의 두 바퀴가 잘 맞춰 나가며 세계에서 식민지배를 딛고 일어선 가장 성공한 국가로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스포츠도 눈부신 성장을 보이며 국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국위 선양을 통해 국민들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켰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이념, 지역, 세대, 남녀 문제 등과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진보, 보수 이념의 혼란과 영호남 지역 갈등, 신세대와 산업화 세대 갈등, 남녀 간 양성 갈등에다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적 빈부의 문제까지 심화되며 사회적 구심점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일지 모르겠지만 여러 모임에서 참석 인원이 많이 줄어드는 것도 이런 사회적 혼란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현재의 혼란한 사회상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선 사라진 사회적 자본을 다시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지연, 학연, 혈연의 ‘결합적 사회적 자본’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정체성과 호혜성을 높이는 ‘연계형 사회적 자본’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여러 사람의 연계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단체 경기를 위시한 스포츠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일이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위해서는 스포츠만큼 자연스러운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창 시절 소풍을 가서 많은 친구와 만나 사회성을 배운 것처럼 스포츠를 기반으로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가 건강한 사회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병리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선 ‘나 홀로 볼링’보다 ‘더불어 하는 볼링’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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