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관한 '이상의 집' ⓒ천지일보 2018.12.19
재개관한 천재 시인인 ‘이상의 집‘ ⓒ천지일보 2018.12.19

20여년 이상이 살던 공간
예술적 사상 발자취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천재 시인의 글은 소박함 속에서 나온 것일까.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 1910~1937)의 글 쓰는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19일 오전 재개관한 ‘이상의 집‘. 이곳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아니다. 담백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의 집은 평소 시인 이상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개관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서적·인쇄본 등 아카이브 공개

이곳은 이상이 1911년부터 1934년까지 20여년 이상이 살았던 곳으로, 그의 삶과 예술적 사상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한 때 경제개발에 따른 훼손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다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모금과 기원후원으로 매입해 보전·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전시회, 회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문화적 장소였다.

이상의 집 내부 ⓒ천지일보 2018.12.19
이상의 집 내부 ⓒ천지일보 2018.12.19

 재개관식에는 공간 재구성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이상의 집’과 이상이 남긴 작품 자료가 공개됐다. 특히 이상의 작품을 최초로 발표했던 서적과 인쇄본 등 다양한 지면 자료들을 구축(아카이브)해 소개했다.

김대균 건축가는 “그동안 시인 이상은 비운의 천재이자, 수수께끼 인물로만 묘사돼왔다”라며 “이상의 작품 120여점을 모아 한쪽 벽면에 아카이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은 ‘오감도’라는 시를 신문에 실었다”라며 “(신문 속의) 시 주변에 어떤 게 있는지 관람객에게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고, 이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장소이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새로 제작한 이상 동상(銅像)도 공개됐다. 동상 제작에 참고한 자료는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1906~1953)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로 이 집에 거주하던 시기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동상은 ‘이상의 집’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해 흉상으로 제작‧설치해 장소의 역사성을 더했다.

흉상을 제작한 최수앙 조각가는 “기본적인 형상의 이미지는 권위적이고, 전체적인 부피 등은 단단히 제작했다”며 “이상에 대한 아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얇고 길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감한 터치로 이상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표현했다”라며 “관람객이 생각하는 이상의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이상의 동상 앞에서 이상의 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9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이상의 동상 앞에서 '이상의 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9

◆천재 시인 이상의 삶

한편 천재 시인인 이상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됐다. 1930년(21세) ‘조선’ 국문판에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인 ‘12월 12일(十二月 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상이 남긴 작품들 ⓒ천지일보 2018.12.19
이상이 남긴 작품들 ⓒ천지일보 2018.12.19

27세에는 생전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창문사에서 일하며 2월에는 연작시 ‘역단’을 발표하고 3월에는 구인회 동지인 ‘시와 소설’ 창간호를 편집, 발간했다. 6월, 변동림과 결혼해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7월 이상이 표지를 장정하고 편집한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가 발간됐다. 9월, 대표작으로 알려진 단편 소설 ‘날개’를 조광에 발표하고 10월에는 연작시 ‘위독’을 신문에 연재했다. 이 연재를 마친 후 이상은 도쿄로 떠났다.

28세 때인 1937년 2월,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도쿄 니시간다 경찰서에 구금됐다.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3월 16일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 한 병원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를 부인 변동림이 화장해 귀국했고 6월 10일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공동묘지가 사라지면서 유실됐다.

재개관한 '이상의 집' ⓒ천지일보 2018.12.19
재개관한 '이상의 집' ⓒ천지일보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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