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난 김남수 뉴메디팜 회장이 건강보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9
지난 14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난 김남수 뉴메디팜 회장이 건강보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19 

의료보험연합회 ‘공채 1기’
공무원 등 3만 5천명 교육
건강보험 제도 정착 이끌어
낫과 쇠스랑 항의 받기도
전국 의료기관 전산화 기여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전 국민 의료보험 정착을 위해 한평생 달려왔습니다.”

김남수 ㈜뉴메디팜 회장은 국내 건강보험 제도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이다.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제도 정착을 이끌었다. 의료보험조합 설립 관련 업무 교육, 대국민 홍보, 심사 청구 업무 전산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분야에서 보낸 세월만 34년.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김 회장에겐 복지부장관 표창과 국무총리표창장이 수여됐다. 건강보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14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건강보험 발전 과정을 구구절절 풀어냈다. 그만큼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건강보험은 2000년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하기 전까진 의료보험이란 명칭으로 불렸다. 김 회장과 의료보험과의 인연은 지난 1978년 2월 의료보험연합회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의료보험연합회는 1977년부터 시행된 의료보험제도의 관리기구다. 김 회장은 당시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었던 500인 이상 사업장의 의료보험조합 설립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조합설립 업무에 대한 직원 교육을 해야 하는데, 장소가 없으니까 스키장, 골프장 중 비는 곳을 찾아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의료보험 적용 대상자와 사업장이 계속 확대되면서다. 1987년 7월 전국 농어촌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대상이 급격하게 늘었다. 옥구, 홍천, 군위 등 군단위로 무려 134곳에서 시행된 것이다. 2만명의 지방 공무원과 조합 공채 직원 등이 전국에서 매주 버스를 타고 교육장소인 포천 베어스타운으로 몰려들었다. 교육은 합숙으로 이뤄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됐다. 1989년 7월엔 도시 지역 보험이 시작됐다. 그때도 1만 5000여명에 달하는 도시 구청 직원과 조합 공채직원 등이 교육을 받았다. 이로써 의료보험이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국민 홍보였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료보험 제도가 정착하려면 국민에게 제도를 홍보해야 합니다. 그 당시 농어촌 의료보험이 시작될 때 TV 드라마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각군 지역신문, 전국 16대 일간지, 4대 TV 방송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홍보했죠. 요양기관과 병원 이용 안내 팜플렛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교육과 홍보에 전력한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가 건강보험제도 세계 1등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그는 자부한다. 물론 처음부터 제도가 국민에게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저항도 있었다. 김 회장이 의료보험 홍보 차 전남 목포 지역에 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보험료 미납으로 자신이 키우던 소의 뿔에 압류 딱지가 붙어 격분한 일부 농민이 낫과 쇠스랑을 들고 항의했던 사건이다.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불상사는 면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김 회장은 의료보험제도 확대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는 1987년 의료보험 10주년 유공으로 복지부 장관 표창,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 유공으로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의료보험이 단시간에 전 국민으로 확대되는 데는 성공했으나, 한 가지 문제점이 발목을 잡았다. 전국의 병원에서 진료비 청구 명세서를 서면으로 청구해 처리 능률이 떨어졌던 것. 보험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일 처리도 그만큼 지연됐다. 결국 의료보험 사업에 전산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서울지원이 전산시스템 시범사업을 했는데, 제가 그 일을 맡았죠. 컴퓨터로 워드를 쳐서 전자결재를 했고, 진료비 청구를 서면에서 시범적으로 전산 디스크로 실시하면서 심사에 전산화를 구축하기 시작했지요.”

전산화의 효과는 엄청났다. 병원과 의원, 보건기관, 약국 등 전국 의료기관으로 전산 시스템이 전파됐다. 보험심사 청구를 전산으로 받도록 했으니 의료기관에서도 전산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전처럼 명세서가 아닌 플로피 디스크로 심사 청구를 하니 처리 물량도 증가했다. 1996년 서울지원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의료 심사 전산화(EDI)가 1997년 치과, 1999년 한방 심사까지 확대됐다. 2000년부터는 의료보험 조합 전산망이 구축돼 건강보험 전산화가 전국적으로 확대 실행됐다.

“지금 제 머리가 많이 빠진 이유는 그때 밤을 새며 전산 에러를 복구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 것 같아요(웃음). 전산실에서 2교대로 돌아가면서 오류를 체크해야 했죠. 그때 전자파를 많이 쐬면 소주와 돼지 껍데기를 먹어야 좋아진다고 해서 3~4명이 마포에 있는 대포집에 가서 소주를 기울이곤 했죠.”

의료보험 전산 심사 기준과 방법이 개발되고, 적용 대상이 한방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전산 시스템의 전국화가 완성됐다. 의료보험의 전산화가 결국 우리나라 전체 요양기관의 업무 전산화를 이끈 것이다. 김 회장은 의료보험이 국내 의료계의 전산화에 기여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의료보험 제도 확대와 전산 시스템 구축에 큰 족적을 남긴 김 회장은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경영지원실 근무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았다. 현재는 의약품과 의료 소모품 등을 유통하는 ㈜뉴메디팜 회장을 맡고 있다. 의료보험 제도 정착을 위해 살아온 34년 외길 인생은 ‘정도 경영’이라는 경영 철학으로 투영됐다. 의약품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약품 구매 유통 과정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병원에 정보를 제공하고, 전체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친절함과 신뢰감을 주도록 하고, 병원 관계자들에 대한 업무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차별화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2019년에 70세를 맞는 김 회장은 80세까지의 10년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 기간에 이룰 목표 중 하나는 노인요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버타운’ 조성 사업이다. 노인들이 마치 감옥과 같은 아파트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지 않고 자연환경과 시설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제일 편한 사람은 친구입니다. 초·중·고등학교, 대학 동기나 직장 친구, 친지 등 10명 정도 어울려 같이 생활할 수 있는 한국형 실버타운이 필요합니다. 향후 10년 동안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에 맞는 실버타운을 만드는 데 마지막 일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사회공헌 활동으로는 서울역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이 상임감사로 있는 ㈔한국보건정책연구원과 서울시 9개 시립병원, 심평원 서울지원, 서울대치과병원 등의 의사·간호사·약사·직원 봉사자들로 구성된 서울역광장나눔의료봉사단이 매월 셋째주 수요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역 인근지역 무의탁 홀몸 노인과 노숙인을 대상으로 진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의료보험 제도 발전에 헌신해온 내 삶을 돌아볼 때 항상 뿌듯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국민 건강과 노인 의료 복지를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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