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 / 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unique) 규제들이 많은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입니다.” “자동차 차축 높이 땅에서 12㎝, 전 세계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이고 임상시험용 신종 의료기기도 정식 통관 거쳐야 하는 유일한 국가”라고도 했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유럽상의(商議) 총장이 반(反)기업 규제를 쏟아내는 한국 정부를 세상의 흐름과 단절돼 있는 ‘갈라파고스’ 섬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갈라파고스(Galapagos Islands)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領) 제도(諸島)로 한국의 전라북도 크기다. 대륙에서 멀리 떨어지고 고립돼 있어 고유종(固有種)의 생물이 많다. ‘갈라파고스 규제’란 일본의 휴대전화 인터넷망 i-mode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학 교수가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전자제품들이 세계시장과는 단절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로, 세계와 동떨어진 자국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규제함으로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때 일본의 전자통신 산업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모바일인터넷, 모바일TV 등을 상용화했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도입,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앞선 기술을 선보였다. 2009년에는 일본의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명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의 전자통신은 내수시장을 지키기 위해 국제 표준이 아닌 독자 표준을 고집하는 일본 특유의 폐쇄적 문화 탓에 치명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약화됐고 한국, 미국 등에 완패를 당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과거 일본의 잘못된 전철을 밟고 있지 않는지 염려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는 친노동 반기업 정책과 갈라파고스적 기업 규제정책에 대한 염려가 국내 기업은 물론 주한 외국 기업들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1월 30일에는 주한미국상의(암참)와 주한유럽상의, 주한영국상의, 주한한불상의, 주한한독상의 등 5개 주한상의(商議) 공동명의로 규제를 풀어달라고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혁신적인 탈규제 및 세제 환경 구축을 정식으로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우리의 회원사(외투기업)들은 한국에서 여성과 청년들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하고, 기술혁신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법인세 등 성실 납세를 통해 세수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규칙과 규제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게 집행되도록 한국의 모든 정부 기관들 간 개선된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총장은 “한국의 규제 스탠더드가 국제 기준과 합치되는 것은 비단 외투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 스탠더드가 동일하면 그만큼 한국의 수많은 중소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 시간과 비용,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국의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과 경제단체는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기업 할 의욕을 잃고 있다”며 “외국 기업들이 나서주니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부끄럽다”고 했다. 

정부는 주한외국상의의 ‘갈라파고스 규제국가’라는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규제가 지속되면 국내 기업의 투자는 물론 해외 업체의 투자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갈라파고스식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표준을 도입해야 한다며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편리해지고 한국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명심해야 한다. 갈라파고스 규제로는 문제인 정부가 추구하는 혁신성장과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요원하다. 관련 부처에서는 주한외국상의에서 제기한 규제 개선 건의를 잘 검토해서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기득권을 가진 저항세력의 반발을 누르고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원칙과 방향이 맞는다면 아무리 우호세력이라도 맞서 깰 수 있는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최근 수년간 일본이 갈라파고스 규제를 철폐함으로 우리와 반대로 다시 경제가 살아나고 실업난이 아닌 기업의 구직난으로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