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인재(人材)’는 재목처럼 쓸 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인재를 잘 쓰면 나라의 기둥으로 인재(人財)가 되지만, 못쓰면 인재(人災)가 된다. 사람이 재앙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사회에서의 인재기용은 어떠했을까. 임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검증 없이 요직에 앉히지 못했다. 비삼망(備三望)이니 천망(薦望)이니 하여 복수로 추천을 받아 조야에 여론을 들은 후에 왕이 최종 낙점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추천을 받은 인물이 하자가 있으면 사간원(司諫院) 간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임금이 임명을 하고 싶어도 이 정도 상황이면 낙점하지 못했다. 명장 이순신을 천거한 이는 바로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이었다. 그러나 이 장군이 역모로 투옥될 때는 반대편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고 영의정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상심이 컸던 서애는 안동으로 낙향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순신이 무과 급제해 기용됐을 때 눈여겨 본 이가 율곡 이이(栗谷 李珥)였다. 이순신의 눈빛을 보고 율곡은 덕성을 걱정했다. 율곡은 이순신에게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천 번 외우라’고 권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순신은 율곡의 당부를 잊지 않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여 훗날 추천인 서애를 영예스럽게 했다.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을 간 도승지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은 충무공으로 시호를 받은 정충신(鄭忠信)을 추천한 장본인이다. 본래 정충신은 천한 신분이었다. 그가 임진전쟁시기 소년의 나이로 권율 휘하에서 종사할 때 행주산성 승전 소식을 임금에게 전달하면서 백사를 만났다. 

정충신은 권율 장군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문둥병 환자로 위장해 왜군의 감시망을 뚫고 의주로 가는 데 성공을 한 것이다. 총명한 정충신을 본 백사는 소년의 충성스러움과 총명함에 감탄을 하고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을 직감했다. 백사는 임금에게 건의해 정충신의 천인 신분을 면제시키고 글과 무예를 가르쳐 과거에 합격시켰다. 

백사도 인재 기용에 앞장섰는데 한번은 친구의 부탁을 받고 현감 하나를 추천했다. 그런데 현감이 독직사건에 걸려 투옥되는 일이 벌어졌다. 조정에서 백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장 백사를 파면하라는 요구였다. 임금은 백사의 잘못이 없음을 알고 소리를 외면했다. 그러나 백사 자신은 임금에게 상소를 하여 자신을 파면해 달라고 간청한다. ‘문제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임금에게 불충했으니 자신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는 자책이었다. 

총명한 유비는 삼고초려(三顧草廬) 하여 천재적 머리를 지닌 제갈공명을 얻어 천하를 통일했다. 성공한 제왕은 인재를 기용하는 데 지혜가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인재(人災)를 당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현 정부가 과거정부의 인사정책이 적폐라고 치부했던 사례를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203명 중 91명(45%)이 이른바 ‘캠코더’ 인사라는 것이다. 상임감사 자리는 49명 중 40명(82%)이 여기에 속했다. 

야당이 현 정부를 지칭해 ‘낙하산·캠코더 인사보다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기관의 장이 되어 조직의 기강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레일 사고는 비전문가를 요직에 앉힌 인재사례다. 혹 전임정부가 적폐 청산이란 미명아래 노련한 전문가들을 모두 퇴직시켜 빚은 사고는 아닌지. 세월호 트라우마를 경험한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야 했다. 

지금은 전문가(specialist) 시대다. 국가 조직은 물론 모든 분야가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조선 유교사회 철저한 삼망, 비망의 프로세스를 시행해보는 것도 현 정부의 실추된 인사 정책을 회복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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